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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사자 아버지 유품 품에 안은 70대아들, 말문 못 열어
류재복 기자  |  yjb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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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3  13: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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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사자 아버지 유품 품에 안은 70대아들.... 말문  못 열어

   
 

[코리아데일리=류재복 대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 슬프기도 하고, 늦게나마 돌아오셔서 기쁘기도 하고 그러네요". 3일 낮 대구 앞산 충혼탑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정부 관계자가 전달한 아버지의 유품(숟가락·탄피)을 품에 안은 김대락(70)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미국 제품으로 보이는 숟가락에는 아버지가 직접 새긴 듯한 이름 석 자가 눈에 띄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3일 27살 청년이었던 아버지(고 김진구 하사)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했다. 제주도에서 2개월가량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부산에 도착한 아버지는 아내 품에 안긴 18개월 된 외동아들을 안고 아주 짧은 시간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씨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순간이었다. 곧장 전쟁터로 떠나야 했던 아버지는 "잘 다녀오겠다"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는 국군 제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1953년 7월 13일 지금의 비무장지대에 속한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을 불과 2주일 앞두고 있었다.

강원도 철원 북방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확보한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23군 예하 제73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이 끝난 직후였던 그해 여름 경북 영일군 송라면에 살던 유족에게 전사통지서가 도착했다. 18개월 된 아들 하나를 둔 젊은 새댁은 가눌 수 없이 슬픈 마음을 추스르며 농사일을 이어나가야 했다.

어린 아기였던 김씨는 고향에서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대구에 있는 큰아버지 댁으로 거처를 옮겼고, 2년여 뒤 어머니도 아들이 있는 대구로 와 정착했다. 어머니는 방직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어렵사리 외아들을 키웠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이 늘 안쓰러웠고 남편 시신이 없어 무덤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올해 초 남편 유해가 발굴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70년 가까이 가슴에 품어 온 한을 풀 수 있게 됐다.고 김 하사는 오는 19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씨는 "구순을 넘긴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함께 묻힐 수 있게 됐다며 안도하신다"면서 "늦게라도 가족을 찾아오신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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