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밀월관계 -中國의 대북 경고…“핵 고집 땐 간부·가족 가혹하게 처벌”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中국가 주석이 5.1경기장에 모인 10만 평양 주민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코리아데일리=홍이숙기자]  조선중앙TV 앞에 2500만 주민이 모여앉은 새해 아침, 육성 신년사는 김정은의 친정(親政) 리더십을 보여줘 온 아이콘이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12월 사망)이 노동신문 등 3개 일간지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갈음했던 기형적 형태에서의 탈피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신년사를 건너뛰었다. 연말 나흘간 열린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내용을 간추려 관영 매체로 전달하는 선에 그쳤다. 꼬여버린 북·미 관계에 대한 회한과 대북제재에 대한 원망이 절절히 묻어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원회의 보고 키워드는 ‘정면돌파’로 모아진다.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우게 좋아지지 못했다”며 고백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그는 어떻게 ‘자력갱생’을 통한 대북제재 돌파 카드를 들고나올 수 있었을까.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가 단독 입수한 중국 공산당 내부 문건 속에 그 답이 숨어있을 수 있다.
 

북한을 속국처럼 보는 시각 씁쓸
6차 핵 실험 제재 때 중국 지도부
“어떤 희생 치르더라도 북 지켜야”
형식적 동참으로 대북제재에 구멍

“중국 공산당과 국가는 북한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키고 북한 정부의 안정과 계승성을 전적으로 담보해야 하며, 조선반도의 평화를 흔들림 없이 확고히 유지해야 한다.”
 

중국공산당 판공청 내부문건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辦公廳)의 내부 문건은 북한 정권의 존립이 중국의 국익에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방 적대세력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중국의 중요한 군사적 완충 지역일 뿐 아니라, 우리 당의 ‘중국식 사회주의’의 고수를 위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정치적 전략지대”라는 구절도 같은 맥락이다.
 
2017년 9월 15일 작성된 문건은 북핵 문제의 보다 철저한 해결을 위한 중국과 북한 사이의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판공청은 밝히고 있다. 과거 중앙비서청으로 불린 중앙판공청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 직속 기관으로 총서기(시진핑 국가주석)를 포함한 핵심 지도자의 통신·보안 등 일상사무를 담당한다. A4 용지 5쪽 분량의 문건은 주로 ‘당(黨) 대 당’ 차원의 대외 교류를 담당하는 공산당 대외연락부에 하달됐다.
 
문건이 만들어진 시점은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감행한 지 8일 만인 같은 해 9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결의 2375호를 발표한 직후다. 함북 풍계리에서 이뤄진 핵 실험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6차 실험은 핵 개발을 완성했다는 의미’라는 관측도 나왔다. 대북 정유제품 공급에 연간 상한선(2018년부터 연간 200만 배럴)을 부과하고, 석탄·섬유 등의 공해 상 선박 환적을 금지하는 등의 그물망 제재가 추가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공청 문건은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쾌감을 담고 있다. “최근 조선의 집권통치자들은 우리와의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핵 실험을 위해 또다시 제멋대로 독단적 행위를 벌여 국제공동체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 대목이 그것이다. 문건은 또 미국이 북한을 반대하는 전쟁에 돌입하면 아태지역 등에 엄청난 영향과 충격을 미칠 것이라며 “일본과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안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공청은 “북한의 반복적인 핵 실험은 중국에 대한 엄청난 국제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고 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책임 있는 국제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에 엄중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당 대외연락부에 주문하는 내용도 문건에 담겼다. 북한을 달래려는 5개 항의 구체 계획도 실려있다. 첫째, 대북 교역 확대와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을 약속하면서 민수용 원유 생산품의 경우 “중국은 제재에 형식적으로 동참할 것”이라며 계속 공급 방침을 밝혔다. 둘째, 중국 내에서 거래할 수 없게 된 북한 무역회사들이 중국 회사에 대한 업무위탁이나 제3국 거래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도록 했다. 셋째, 대북 민생·인프라 지원을 2018년에 전년 대비 15% 늘리고 향후 5년 동안 매해 10%씩 늘린다는 항목도 있다. 넷째, 중국 은행의 대북거래 중단조치는 국영은행에만 적용한다고 밝혀 금융제재에 구멍을 뚫어줬다. 다섯째는 최신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특수 군수품에 필요한 최첨단 과학기술을 북한에 더 많이 지원하겠다는 파격적 제안도 담았다.
 
채찍과 함께 당근을채찍과 함께 당근을 제시한 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대북제재에 대해 마뜩잖아하는 중국 지도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공청 문건은 “역사적 경험은 어떤 유엔 결의안으로도 조선 통치자들의 핵 실험 연기 또는 완전한 포기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핵 개발에 대한 의지와 결심을 더욱 굳게 할 뿐이란 주장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인식도 확인할 수 있다. 문건은 “조선이 즉각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며, 단지 앞으로 새로운 핵 실험을 계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 중국의 (대북) 지원이 즉시 증강한다는 담보를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조선이 제재에서 벗어난 몇 해 이후부터 조건이 무르익으면 점차 개혁을 실시하며, 최종적으로 조선반도의 비핵화 요구를 실현할 것을 (중국은) 요구하고 있다”며 베이징 측의 북핵 해결 로드맵을 정리하고 있다.
 
2년여 전 만들어진 중국 공산당 내부 문건이 주목되는 건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 때문이다. 전원회의 보고에서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충격적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머지않아 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란 말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구체적 도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연말 ‘평양발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는 요란을 떨었지만 불발된 건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선 미국과 이란의 군사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일행이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절멸하는 사태를 목도한 평양 권력 핵심부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시선은 김정은의 전원회의 보고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한 북한 내부 사정에 쏠린다. 그는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자력번영 하자”고 호소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식언(食言)이 됐다. 판공청 문건에 담긴 대북 조치들은 은밀한 경로로 북·중 간에 이행되거나 평양 쪽으로 건네졌을 공산이 크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버티기 모드로 들어간 김정은의 뒷배엔 중국의 선물 보따리가 놓여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들고 버틸 경우를 거론하며 “조선의 간부들과 그 가족 성원들에 대한 처벌을 위한 가혹한 특별조치들을 일방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중국 판공청 문건의 끝 대목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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