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시/ 김춘산 (중국흑룡강방송국 기자/시인)
아버지는
터밭에 자라는 배추들을
떡잎부터 알아보신다
봄이 물든 누이의 볼때기처럼
포동포동 알찬 것들은
배추라고 하셨고
나의 쑥대머리처럼
바람이 드나들어 빈 것들은
얼간이라 하셨다
배추는
곳간으로 움속으로 가지만
얼간이는
덕장이나 처마밑에 매달려
시래기라고 개명해야 했다
바람이 옷깃에 추운 날
자붕이 낮아 따뜻한
옛골목 노포에 앉아
시래기 된장국 한그릇 마주하면
세월의 유약이 구운 뚝배기에는
시골 밭고랑에 서리던
아버지 냄새가 찬다
얼간이같은 녀석이라고
나에게 회초리 드시던 아버지가
왜 속을 다 내어 주시고
스스로 얼간이가 되였을까
왜 수맥을 다 끊으시고
검불같은 시래기가 되셨을까
시래기 된장국의
이토록
구수하고 깊은 그 맛을
한 그릇 뚝딱 한
三冬의 어느날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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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숙 기자
(hys83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