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시/ 김춘산  (중국흑룡강방송국 기자/시인)

아버지는

터밭에 자라는 배추들을

떡잎부터 알아보신다

 

봄이 물든 누이의 볼때기처럼

포동포동 알찬 것들은

배추라고 하셨고

나의 쑥대머리처럼

바람이 드나들어 빈 것들은

얼간이라 하셨다

 

배추는

곳간으로 움속으로 가지만

얼간이는

덕장이나 처마밑에 매달려

시래기라고 개명해야 했다

 

바람이 옷깃에 추운 날

자붕이 낮아 따뜻한

옛골목 노포에 앉아

시래기 된장국 한그릇 마주하면

세월의 유약이 구운 뚝배기에는

시골 밭고랑에 서리던

아버지 냄새가 찬다

 

얼간이같은 녀석이라고

나에게 회초리 드시던 아버지가

왜 속을 다 내어 주시고

스스로 얼간이가 되였을까

왜 수맥을 다 끊으시고

검불같은 시래기가 되셨을까

 

시래기 된장국의

이토록

구수하고 깊은 그 맛을

한 그릇 뚝딱 한

三冬의 어느날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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