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그러진 술주전자 

김인덕  글

쭈그러진 술주전자의 신세타령

먼저는

생업에 뛰어들기도 전에

이유없이

주인의 망치에 두들겨 맞았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홀에 호출되었다가

여기저기 술상 모서리에 맞히고

멋도 모르고

사정없이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상처를 훈장처럼

주렁주렁 가슴에 단

쭈거러진 술주전자

 

밤새도록

낯선 손에 목덜미를 잡히고

다람쥐 채바퀴 돌듯

술잔을 오가며

귀로 열물을 토했다

 

온갖 짖거리에

머리가 욱신거리고

지꿎은 나그네의 육담에

잠시 마음이 설레이기도 했다

 

자정이 되어서야

시렁구석에 납작 엎드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빈속을 달래며 잠을 청한다

 

마침내

새벽이 가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쭈그러진 술주전자끼리

부둥켜안고

스며드는 한점의

찬바람에 휘파람을 분다

 

쭈그러진 술주전자는

누구나 가슴에

쓰고 농열한 소주쯤은

눈물이 마를 때까지

몸으로, 맘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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