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스칸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코리아데일리=홍이숙기자]  징기스칸릉은 중국 내몽골자치구 포두시 남쪽에서 200km떨어진 이진호뤄기 경내에 있다. 릉원은 3개의 몽고포식 웅위로운 전당으로 구성되었다. 총면적은 5.5만m²이다. 이곳은 허허넓은 푸르른 초원으로 얼둬스고원의 황홀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철 초원을 달리는 말

   전하는데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700여년전에 징기스칸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원정하면서 이곳을 지나가다가 아름다운 경취에 도취였다고 한다. 그가 한창 기뻐서 어쩔줄 모를 때 그만 말 채찍이 땅에 떨어졌다. 그는 말을 멈추고 이윽토록 깊이 생각하다가 “이곳이야말로 쇄망의 조대가 부흥할 땅으로 태평성세하며 살아갈 곳이다. 매화꽃 피여나고 어린 사슴 자라나는 곳, 백발로인의 안식처로구나. 내 보건대 이곳은 아름답기 그지없은즉 내가 죽거들랑 이곳에 묻어달라”고 하 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징기스칸의 땅 --하얀 멍구포우와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소와 양떼들

   1227년에 징기스칸이 서하를 함락할 때 병으로 부대에서 죽었다. 몽골귀족 영주들이 시신을 천리밖에서 이곳에 수송해다가 안장하였다. 이때로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이진호뤄”, 뜻인즉 “주인의 릉원”이라 불렀다. 항일전쟁시기에 영구를 먼저 감숙성 유중현 흥륭산에 옮겼다가 후에 청해성 열중현 탑이사에 옮겼다. 1954년에  이곳에 새로운 릉원을 세웠다.

징기스칸릉

     징기스칸의 유체는 기실 릉원안에 있지 않다. 그를 대체 어디에 묻었 는가는 지금까지도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징기스칸은 1227년 8월 25일에 지금의 영하 영부현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는 병으로 죽기 전에 일찍 유언을 남겼는데 서하를 투항하도록 속이기 위하여 죽은 후에 절대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징기스칸의 말 안장이 놓여진 평정산

 서하가 투항한 후 그들은 비밀리에 영구를 몽골에 옮겨왔다. 오는 도중 만나는 사람은 다 죽여버렸다. 장의를 진행할 때 오직 제종왕과 공주들만이 참가하였다. 몽골의 당시 풍속에 따르면 귀족이 죽으면 지하에 매장하고 묻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위해 수많은 말들이 밟아 땅을 평평하게 만든다. 그리고 묻은 자리 위에 수많은 나무들을 심고 풀들이 자라나게 하여 누구도 징기스칸을 어디에 묻었는지 모르게 하였다.

하지만 징키스칸이 말을 타고 달리던 그 땅을 한번 밟아보는 것도 삶이 흔적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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