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를 엿볼수 있는 中國시안

중국시안

[코리아데일리=홍이숙기자] 옛날 장안(長安)이라 불렸던 중국시안은 오랫동안 중국 고대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다. 동시에 한국과 중국의 깊은 우정과 공동의 적에 함께 맞서 싸웠던 혁명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시안은 3100년 넘는 도시의 역사를 지녔고, 1100년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시안은 서한(西漢)때부터는 세계 각국과 경제,문화, 친선 왕래가 이뤄지던 주요 도시였다. 중국의 고대 실크로드는 시안에서 출발해 고대 로마까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시안 곳곳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뒤얽힌 흔적을 볼 수 있다. 린퉁구 남쪽의 리산에는 그 유명한 진시황릉의 병마용이 있다. 조성에서 순장과 출토에 이르기까지 2000년 동안 세월의 흐름과 격변속에 조용히 묻혀 있던 제왕의 무덤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풍당당한 기운이 서려 있다.

 

리산 북쪽으로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쓰인 화청궁(華淸宮)유족이 있다.

시안의 시내 중심에 이르면 명나라 때 지어진 고대 성벽을 볼 수 있다. 이 성벽은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지닌 시안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안의 야경

시안은 황제가 거한 도시의 위용과 고도(古都)로서의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 점 외에도 지역 특유의 넉넉함과 만인이 동경하는 도시로서의 여유가 배어 있다. “굽이치는 세상 속 제왕의 도음, 유유한 세월 속 백성의 터전”이라는 시구는 이 같은 시안의 복합적인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西安과 한국 광복군의 인연

시안은 중국의 현대사에도 굵직한 종적을 남겼다. 1936년 12월 12일,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점점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애국지사로 추양받는 군 사령관 張學良과 楊虎城이 시안에 시안사변 (西安事變)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蔣介石가 “외세를 막으려면 먼저 내부를 안전시켜야 한다‘는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중국의 항일 통일전선 형성에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시안은 중국의 혁명성지인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중국 항일 활동의 주요 근거지이기도 했다. 1937년 7월,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 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끄는 항일 광복투쟁군이 중국 인민들의 항일 전쟁이라는 거센 물결에 합류하면서 항일 세력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먹거리 천지인 시안 골목골목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서는 적의 점령지 내에 한인 청년들을 파견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일이 급선무였다. 1939년 11월, 임시정부는 시안에 군사특파단을 파견하고 통제방일대에 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해 선전 동원 활동에 나섰다. 많은 노력 끝에 한인 청년 50여명은 ’한인 청년 특별훈련반‘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1942년에는 중국 정부의 협조로 김원봉이 이끄는 또 다른 한반도 독립 무장세력인 ’조선의용대‘가 한국 광복군에 편입되였다. 수많은 청년들이 적군의 봉쇄를 뚫고 화북지방의 항일 전선에 뛰여 들었다.

1945년 세계적으로 反파시스트 전쟁이 잇따라 승리를 거두면서 마침내 연합군의 한반도 참전이 현실화 되었다. 이범석 대장이 이끄는 한국 광복군 제2지대의 사병 180여명은 중난산(終南山)의 고찰 미퉈구쓰 일대에 훈련기지를 설치하고 미국 oss의 야전 훈련,사격술, 폭파술, 도강술.비빌전수술 등 첩보 훈련을 진행했다. 8월 10일 전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였던 김구는 중국 충칭에서 시안으로 이동해 광복군 훈련기지에서 훈련상황을 지켜 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한미 oss훈련도 끝을 맺었다.

西安과 한국의 교류

1992년 중한 수교이후, 한중 양국은 인문 교류뿐만아니라 무역과 과학기술교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체, 바이오의약, 스마트 모바일단말기, 소프트웨어, 서비스 아웃소싱 등 4개 산업 분야에서 현재 100억 위안 (약 16조 5340억원)대 규모의 산업클러스터를 구성해 시안 하이테크산업개발구에서 본격적인 전개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사업 범위를 넓히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리커창 총리는 ”....삼성과 중국의 오랜 협력을 통해 하이테크 분야의 협력은 반드시 고부가 가치를 지닌 성과로 되돌아 온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한중 양국의 깊고 오랜 역사와 함께 피 흘리며 싸웠던 혁명 투쟁의 우정과 오늘날의 소중한 인연은 오래오래 이어 나갈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