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 전통무술 제3대 전승자 김봉진

[코리아데이리=홍이숙기자] 중국의 조선족전통무술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길림성 무술감독으로 있는 김봉진이다.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경기대회에서  길림성 무술팀 감독을 맡은 김봉진 감독

  중국무술이 조선반도에 전해진 역사는 근 500년이 되지만 체계적이고 특색 있는 조선민족무술이 탄생되지는 않았다. 일제 강점시기, 할어버지를 일찍 여읜 김봉진의 가족은 할머니가 가족의 기둥이 되였다.  김봉진의 추억 속에 할머니는 다듬이 방망이를 늘 배게 밑에 숨겨놓고 강도나 일본인들이 쳐들어올 때면 방망이를 휘두르며 그들과 싸웠다. 날이 갈수록 할머니는 다듬이뿐만아니라 기타 농기구를 무기로 다루는 요령을 습득하였고 적들을 정밀하게 타격할수 있는 동작들을 창작해냈다. 그후 김봉진의 할머니는 동네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자타공인 조선족무술의 제1대 창시자로 인정받았다. 그후 김봉진의 할머니와 아버지(제2대)는 울라지보스또크로 피난갔다가 중국훈춘을 경유해 1943년부터 화룡 복동에 정착하였는데 다니는 곳마다 무술가문의 명성을 떨쳤다.

청년시절의 김봉진

  무술은 흔히 권법과 무기 두가지로 나뉜다. 그중 조선족 전통무술은 무기를 위주로 하는 전통 무술로서 도리깨, 떡메, 다듬이, 지게, 칼을 비롯하여 생산과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농기구를 무기로 삼고 권법은 무기동작을 맨손으로 재연시키는 동작이 많다. (이를테면 도리깨권법连极拳등)

  전통 무술이 생산과정에서 전변한 민족전통체육이라고 한다면 진정으로 규범화되고 국가적으로 인정을 받은 중국 조선족전통무술은 제3대 전승자인 김봉진으로부터 탄생 된 것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할머니와 아버지처럼 김봉진의 무술사랑은 어렸을 때부터 알수 있었다. 9살이 되던 해, 그는 민간무술인들로부터 태극권 등 중국무술을 배웠고 20대 초반에는 아버지의 영향하에 실제로 농사일을 하면서 도리깨, 떡메 등 무기를 다루고 무기제작하는 방법까지 습득했다.

1978년에는 무술학교를 세워 조선족무술과 중국전통무술을 결합시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후 또 북경체육학원에서 몇 년간 중국무술명가로부터 “查拳”, “形意拳” 등을 배웠다. 졸업후 그가 가르친 아마추어팀의 수준은 성급 프로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고 전국대회에서까지 이름을 올리며 명성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김봉진과  그의 무술제자들

  지난 세기 80년대초, 중국정부에서는  전통무술을 발굴하고 무술문화유산을 살리기 위해 전국무술발굴정리사업(全国武术挖掘整理工作)을 전개하였다. 조선족 전통무술은 그때에야 비로소 중국 전통무술의 한가지로, 조선족병기는 중국 무술 18병기 이외의 기타 병기로, 김봉진은 조선족전통무술의 창시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중국무술 18병기

  김봉진은 줄곧 체육교육사업에 몰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운동선수로도 활약을 펼쳤다. 1986년 제3회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경기 당시 대회에 참가한 소수민족 전통무술은 종류가 너무 복잡한 원인으로 경기규칙을 정하기 어려워 경기종목이 아닌 공연종목에 편입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봉진은 첫등장부터 최우수상을 수여받았다.

  김봉진은 20년후 딸이 대신 자신의 꿈을 이루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2011년 제9회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경기대회 때부터 전통무술은 공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였다. 2011년과 2015년 두차례의 전국소수민족전통체육경기대회에서 김봉진의 딸 김홍란 선수는 2등상 3개, 3등상 1개를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김봉진의 딸 김홍란이 전국무술시합에 참가

   김홍란도 아버지처럼 9살 때부터 중국전통무술을 시작으로 20대 초반에 북경체육대학을 졸업하였다. 그후 중국연변대학 체육학원에서 무술교사로 있으면서 역시 아버지 김봉진처럼 조선족전통무술의 계승과 발전에 힘을 다하고 있다.

  어찌보면 조선족무술을 이어나가는 중임은 모두 김봉진 가문의 어깨에 놓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에서 받는 상보다 조선족전통무술을 널리 알리고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하는 것이 진정 값진 의미라고 김봉진 감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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