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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1호' 여성기장, 대한항공 신수진 기장
류재복 기자  |  yjb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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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4  20: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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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여성기장  대한항공 신수진 기장

   
 

[코리아데일리=류재복 대기자] 비행 조종 면허를 손에 쥔 순간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67년생 신수진은 솔직하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꿈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어지러운 사회 탓에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동기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거나 결혼하기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도 없었고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해본 터라 결혼도 선택할 수 없었다.  

 

신수진(51) 대한항공 기장은 23년 차, 총 8천여 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파일럿이다. 미국 여행 중 우연히 체험한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도전하고 싶은 꿈을 만났고, 금녀의 구역이었던 국내 민항기 1호 여성 조종사가 되었다. 진로에 고민 많은 딸에게, 그리고 딸 같은 여자 후배들에게 희망의 증거로 다가가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투기가 민항기보다 큰 줄 알았어요. 그랬던 제가 파일럿으로 평생 살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이십 대 중반. 미국 시애틀로 아버지의 출장길에 동행했다.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진로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던 때였다. “언니들처럼 졸업 직후 시집가기는 싫었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무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우연히 관광용 소형 비행기에 탑승했다. 조종사는 잠시동안 그에게 조종간을 맡겼다. “작은 비행기라 좌우로 움직임이 컸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비행을 배울 곳이 없었다. 항공사에서 선발하는 조종 훈련생도 남자만이 지원할 수 있었다.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비행학교에 등록했다. “훈련을 마치고 ‘자가용 조종사(PPL, Private Pilot License)’ 면허를 받는 순간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꿈을 만났지만, 도전을 이어나가진 못했다. 폐암4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곁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병간호하는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후회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그 말이 유언처럼 들렸다. 책임감과 부담감을 등에 지고 다시 미국의 비행학교(씨에라 아카데미)로 향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 다짐했어요. 여자가 활동할 공간이 없었으니까요. 돌아오는 건 곧 실패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미친 듯이 비행만 생각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떠올리면 쉬는 시간조차도 죄스럽게 여겨졌다. 비행학교를 마치고 2년 넘게 교관 생활을 이어나갔다. 비행시간을 쌓아 현지에서 파일럿으로 활동할 계획이었다. “삶의 고민에 짓눌리지 말고 하나씩 풀어나가자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그때 새로운 문이 열렸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첫 여성 조종 훈련생을 선발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지난 1996년 첫 여성 조종사로 입사했다. 회사에서 교육하려던 거의 모든 자격증을 이미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삶은 타이밍이고 기회는 꼭 주어지는데, 그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죠. 견디며 준비했고, 결과가 따라왔습니다”

이후 11년간 부기장 생활을 했다. 보잉사의 MD -80, 747-400, 747, 777 등 4가지 기종을 순차적으로 몰았다. 현재는 777기종만 운항한다. 그리고 2008년 국내 최초로 민항기 여성 기장이 되었다.  
 
“기장으로 첫 비행에 나섰던 편명입니다. 조종석에서 부기장과 악수하고 출발하려는데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항공승무원들의 제복에는 금빛의 줄이 새겨져 있다. 기장의 손목에는 4개의 줄이 있다. 한 줄은 훈련생, 두 줄은 자격 취득, 세 줄은 경험, 네 줄은 책임감을 상징한다. “조종석은 이미 익숙한 공간인데 기장이 되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임감이라는 시야가 열린 거죠. 동시에 외로움도 몰려왔습니다. 기장은 모든 상황의 마지막 결정권자기에”   
 

조종사는 비행기가 출발지를 이륙해 도착지에 착륙하는 순간까지 비행계획에 따라 안전운항이 진행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비행 감시(Flight Watch)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순항비행 중에 통과하는 각 관제구역의 통신에 집중하면서 엔진 및 각종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기종 면허는 6개월마다 훈련시간을 쌓은 뒤 갱신해야 하고 법률, 기종, 엔진계통, 기상 등에 대한 시험도 이어진다. 기준에 미치지 못한 조종사는 가차 없이 짐을 싸서 떠나야만 한다.
  
신 기장은 23년간의 비행 중에 다행히도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악천후나 긴급 상황은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더라도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닙니다. 회피 비행이 진행되고 있고 이러한 상황들이 금세지나갈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는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장이 직접 기내방송을 하는데 의외의 반응들이 많다고 했다. “승무원을 통해 사인을 부탁하거나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형태의 믿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매뉴얼 실에 근무하던 직원이 조종사가 꿈이라고 하더군요. 항상 가슴에 가짜 윙 배지를 달고 있었죠. 2년간 급여를 모아 비행학교에 진학했는데 형편이 아주 어려워 조종사들이 모금해 학비를 보태주기도 했어요. 결국 다른 항공사의 파일럿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조종사라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꿈을 향한 믿음’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저 이후의 여자 조종사 후배들, 조종사의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사회의 어른으로, 선배로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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