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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단독] "우리는 최초 北派대원으로 北의 6.25 南侵을 막으려 했다"<上>北의 남침을 事前 저지하기 위해 대원들을 北派 시킨 호림특수부대
류재복 기자  |  yjb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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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2  18: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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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사)호림안보협의회 회장권한대행 송성식

[단독] “우리는 최초 北派대원으로 北의 6.25 南侵을 막으려 했다“<上>

   
(사)호림안보협의회 송성식 회장권한대행

北의 남침을 事前 저지하기 위해 대원들을 北派 시킨 호림특수부대

軍番-階級 없이 危機의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젊은 靑年들

[코리아데일리=류재복 대기자] “호림의 역사! 피 끓는 모진 역사의 진실에서 망각할 수도 방임할 수도 없는 현실이 이곳에 있습니다. 현재 우리 단체가 간직하고 있는 역사에는 315명의 호국영령들이 국가수호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광복 후 미군정 3년을 거쳐 사상 최초로 1948년 8.15건국 후 과도기에도 오로지 애국이란 신념하나로 젊음의 충정을 국가에 바친 사나이들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지난 11월 4일 오후 4시, 기자는 서울 종로 3가 낙원동 경동빌딩 옥상에 소재하고 있는 (사)호림안보협의회를 찾았다. 이 단체는 70년 전인 1949년, 북한 공산당이 호시탐탐 소련과 중공의 힘을 등에 업고 남한인 대한민국을 침공하기 위한 계획을 하고 실행하려할 때 이를 사전에 막고 한편으로는 북의 정보를 얻기 위해 敵地에 침투, 장렬히 전사를 했던 당시 호림특수부대 대원들의 기상과 맥을 이어오고 있는 (사)호림안보협의회 송성식(82) 회장권한대행의 말이었다.

기자를 반갑게 맞은 송 회장대행은 “협의회 재정상황이 너무도 열악해 이런 옥상에서 일을 보고 있다”면서 “황휘성(92) 회장님께서는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사무실에 출근을 못하고 계시지만 황 회장님은 70년 전, 호림특수부대에서 활동을 하신 분으로 회장님을 비롯 먼저 숨져간 우리 대원들은 적지에서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 역사가 있기에 우리 대원들과 단체는 특수임무에 의한 국가로부터의 정당한 보상을 받으려고 노력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해방 74년, 그리고 분단 74년, 그 속에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함께 발전적 바탕을 토대로 현재까지 이만큼 성장해 왔지만 대한민국 건국시기인 1948년 초기, 당시 북한은 김일성이 집권자로 등장 하면서 소련의 사주를 받아 우리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려 했다.
   
황휘성 회장이 2018년 현충원에서 거행된 호림특수부대 전몰장병위령제에서 인사를 하고있다.

1948년 建國 초기, 北은 소련-중공 지원을 받으며 南侵준비

미군의 통제와 지시를 받았던 南, 북한 인민군에 비해 劣勢

김일성은 또 월북한 남한의 청소년들을 포함해 어린 10대들을 양성, 세뇌시키면서 강원도 양양과 설악산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전투를 감행했고 지리산 등지로 빨치산을 투입, 남쪽의 흐름을 파악하려 했다. 또 당시 북한은 각종 무기를 중공과 소련으로부터 구입해 남침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북의 이런 정보들은 월남한 사람들로부터 알게 된 것이었다.

이때 이러한 북의 게릴라들을 색출하기위한 부대가 바로 호림특수부대인데 이 부대는 당시 대통령, 국방장관, 정보국장 등 고위층만이 알고 있는 비밀리에 구성된 특수부대였다. 그러나 현재 호림부대의 역사와 전투 실적들이 존재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6.25전쟁 와중에서 그 기록들이 소실되고 부대가 재 편성 되었기 때문이다.

‘호림’이란 이름은 평안도 풍인 맹호출림(猛虎出林)이란 표어에서 전투교훈으로 삼은 것이며 이는 훗날 대한민국 육군의 전초기지를 닦은 초석이 된다. 호림특수부대는 바로 그 전통과 맥을 잇기 위해 虎자와 林자를 따서 호림부대로 그 명칭을 유지했으며 호림부대는 1948년 당시 국군창설을 전후해서 편성된 특수부대로 호림에 몸담은 대원들은 두 번의 특수 군사훈련을 거쳐 탄생이 된 혁혁한 현역 장병들이었지만 계급과 군번이 없었다.

1948년 당시의 남북관계는 매우 혼탁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미-소 양진영의 대립은 세계를 불안하게 했다. 특히 소련과 중공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던 북한으로서는 남한정부를 침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소련은 이미 김일성을 북한의 수령으로 만들어 놓았고 남한을 적화통일 시키려는 목표아래 군대편성, 장비구성, 예비대편성, 총국민조직 등 공격을 위한 국가구조로 만들어 놓은 후 1948년 말, 완전무장한 10개 보병사단과 기갑사단을 주축으로 전쟁준비를 완료, 남침의 시기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때 우리 군은 경무장한 여단규모의 10개 보병사단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탱크, 자주포, 전투기 하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군대로 북한의 인민군 전투력과는 대조가 안 되는 나약한 열세의 군대였다. 이러한 틈을 타 북한은 남한 곳곳에 게릴라를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했다. 이에 우리 군은 이들을 소탕하느라 많은 병력을 투입, 나날이 군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백의곤이 지휘했던 호림특수부대원들
   
1970년 7월, 동아일보에 실린 호림특수부대 기사

生死 무릅쓰고 滅共전선에 뛰어든 자랑스러운 서북청년단 대원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후 北派 목적의 특수부대 創設

그러나 우리 군으로서는 미군의 동의 없이는 무기나 병력을 증편할 수가 없었다. 당시 마국은 2차 대전의 악몽을 잊지 못해 우리 측에서 제공하는 북한의 침략정보도 믿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남북 간의 전쟁이 발발 할수 있다는 과민한 경계심 때문에 병력 및 장비의 증강을 극력 억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군 수뇌부는 속수무책으로 좌시하고 있다가 대한민국을 공산집단에 고스란히 넘겨줄 수 없다는 대책을 세우려 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즉 모든 면에 미국의 지시와 통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생각한 것이 생사를 무릅쓰고 멸공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청년들을 생각한 것이다. 서북청년단 단원 중 필요한 인원을 차출하여 이들에게 특수훈련을 시킨 후 북한에 침투시킨다는 최종결론을 우리 군 수뇌부가 낸 것이다. 즉 10만 명의 서북청년단에서 약 6000명을 차출, 50개의 특수부대로 편성해 특수훈련을 시킨 후 순차적으로 북한 지역인 적 후방 깊숙이 침투시켜 교란작전을 전개시키면 상당수의 인민군들이 동원되고 결국에는 그들의 남침기도를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는 효과를 기대하는 작전이었다.

이에 우리군은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승낙을 받아 극히 제한된 지휘계통의 책임자들만이 회동을 해 다음과 같은 계획을 수립했다.

첫째, 특수부대를 신설하여 특수대원을 양성하고 북파특수부대를 창설한다.

둘째, 경북 일원에서 준동하고 있는 북한 게릴라 소탕을 위해 서북청년단 출신 으로 부대를 편성, 현지에 투입해서 이미 특수작전을 경험한 ‘한완룡’ 소령이 지휘하는 호림특수부대 350명을 주축으로 편성한다.

셋째, 국방부4국 지원을 받아 서북청년단 출신으로 편성하여 동해지역에서 첩 보 활동을 전개하여 온 ‘백의곤’이 지휘하는 120명과 ‘김현주’가 지휘하 는 120명 등 240명이 하나가 되는 일명 ‘계림부대’를 편성한다.

넷째, 순서에 따라 편성하고 북파에 따른 인력충원은 서북청년단(단장 문봉제) 에서 담당한다.

다섯째, 보안을 위해 북파 시에는 현역군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호국군인 신분 으로 북파 한다.

여섯째, 모든 북파요원에 대하여는 그 가족에 대한 생계를 보조하고 귀환 시는 직책과 전투공적 등에 상응하는 계급을 부여하며 상당한 보상금을 수여한다.

이상과 같은 계획이 수립되자 우리 군은 대통령령 제37호(1948년 12월 7일)에 의거, 1949년 2월 25일부로 특수부대 양성을 위한 육군수색학교(교장 김용주 소령)가 설립되었고 그해 5월, 서북청년대원 350명이 입교를 하고 5월 말경에는 ‘백의곤-김현주’가 지휘하는 계림부대원 240명이 입교를 했다. 그리고 그해 6월말까지 1개월에 걸쳐 총기류조작, 수류탄투척, 폭약취급요령, 제식교련, 각개전투, 유격전 등 교육훈련을 시켰는데 이때 교육담당이 육본 정보국 특무과장인 ‘김형일’ 중령이었다.(이후 ‘김형일’ 중령은 육본 행정참모부장과 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

<下>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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