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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름다운 해변도시와 한민족의 발자취를 보았습니다"<하>옛 발해 땅, 무용지물의 광활한 평원 대지에 모두가 감탄
류재복 기자  |  yjb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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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5  17: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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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청주산악회 ‘블라디보스톡’ 여행

[단독] “아름다운 해변도시와

                    한민족의 발자취를 보았습니다”<하>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평원대지인  옛 발해 땅

옛 발해 땅, 무용지물의 광활한 평원 대지에 모두가 감탄

한국인 식당 ‘명가’의 ‘킹크랩’ 맛! 천하일미! 잊을 수 없어

[코리아데일리=류재복 대기자] 최재형 선생, 이상설 선생 등 걸출한 독립투사들의 흔적을 멀리하고 마지막으로 옛 발해성터를 돌아보았는데 드넓은 평야가 정말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무용지물의 땅으로 아쉬움만 있었다. 만약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아마도 엄청난 관광지로 변해 있을 것이다.

발해성터를 출발,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 도착한 일행은 블라디보스톡 시민들의 휴식처로 여름이 되면 일광욕, 해수욕을 즐기는 해변가로 불리는 젊음의 거리인 ‘나베레즈나야’ 거리를 산책했다. 이곳에서 필자는 너무도 더워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혔다. 저녁식사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명가’식당에서 ‘킹크랩’을 곁들인 식사를 했는데 이날 식사가 이번 블라디보스톡 여행중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이었다. 풍부한 량에 맛 또한 천하일미로 필자의 생애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킹크랩 이었다. 이것을 서울에서 먹으려면 1인당 12만원을 줘야 하지만 이곳은 생산지 때문에 1인당 500g(다리부분) 2만원으로 그야말로 포식을 했다.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나베레즈나야’ 

 
   

최고의 맛을 보인 킹크랩 

 

 

여행 4일째인 8월 7일, 오전에만 관광을 마치고 오후에는 동해로 향하는 DBS크루즈 훼리호에 승선, 귀국을 해야 하는 날이다. 호텔에서 식사 후 짐을 챙겨 버스에 승차, 고려인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전진기지인 ‘신한촌’을 돌아보았지만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기념비만 있었다. 이곳 ‘신한촌’은 1874년 블라디보스톡에 세워진 마을로 주로 한인들은 이곳에서 꿈과 희망을 모아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콜레라가 창궐하자 러시아 정부는 시 외곽으로 이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후 새로 만들어진 마을을 신개척지라고 정해 한인들은 이곳에 다시 희망의 마을로 ‘신한촌’으로 이름을 정했고 강인하고 끈질긴 삶의 의욕을 불태웠다.

강제이주 후 만들었던 신한촌(新韓村), 현재는 비석만 남아있어

비석 앞, 절도 방지차원의 쇠사슬 묶은 의자 모습에 놀라

새로운 한인마을, 즉 ‘신한촌’으로 불렸던 이곳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 까지 존재하면서 해외 독립 운동가들의 주요활동 근거지가 되었다. 이곳 기념비를 관리하는 사람은 고려인 부부로 여성의 이름은 김지나 씨 였고 남편은 부재중이라 만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이곳 관리소 방명록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한인들에게 머리숙여 존경을 드립니다“라고 필적을 남겼다. 이어 3호버스 일행이 이곳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었고 필자는 가이드청년 김영훈을 한국 인터넷에 알리기 위해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인 청년 27세 가이드 김영훈

이어 블라디보스톡에서 마지막 참관 일정인 ‘성모승천 대성당’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러시아정교회’ 가장 큰 성당으로 러시아 정교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입구에서부터 내부의 모습이 매우 웅장하고 장엄했다. 교회 앞에는 러시아 마지막황제인 니콜라이2세 동상이 굳건하게 서 있어 이곳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일행 98명은 블라디보스톡 항구에서 귀국을 위한 출국수속을 시작했다. 2박 3일간 일행을 위해 수고를 한 김영훈 청년과도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눠야 했다. 물론 1호, 2호 버스 가이드인 한국인 여성들도 수고가 많았다. 특히 1호 버스 여성가이드는 아버지가 러시아, 어머니는 한국인을 둔 혼혈아로 미모가 매우 뛰어났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DBS크루즈 훼리호에 승선, 동해를 떠나 러시아로 올 때와 똑같은 선실에서 24시간을 보낸 후 여행 5일차인 8월 8일 12시 30분, 일행은 동해항을 통해 입국, 무사히 귀국을 했다.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떠나면서 기념을 남긴 재경청주산악회 회원들

이번 블라디보스톡의 2박3일간 여행에서 필자는 연해주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옛 소련에 대한 정치를 더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소비에트 체제는 1920년대 말부터 안정기에 접어든다. 즉 급속한 공업화와 국방력 강화를 배경으로 1930년대부터 러시아민족주의가 대두됐고 당시 집권자인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강력한 중앙지집권 정책을 실현해 나갔다. 그러나 스탈린은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이 높은 한인들을 경계대상으로 삼았기에 한인 민족주의자들을 속속 숙청을 했다.

유배지였던 황무지를 개간, 삶의 꽃 피워 올린 한민족의 혼!

동북아 공존-번영 필요 현실에 평화의 불꽃 피워 올린 한민족

이로 인해 결국 연해주 한인전체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가 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스탈린 정권은 한인의 강제이주를 결정했는데 바로 한인들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한인 민족주의자들을 숙청하면서 이들은 목적지도 모르는 채 빈손으로 쫓기듯 기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들이 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은 오직 굶주림과 공포뿐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의 종착역은 막막한 중앙아시아 벌판,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고 엄동설한을 견뎠으며 황무지를 개간해 나갔다. 그렇게 그들은 막막한 광야에서 삶을 피워 올렸다. 특히 연해주에서 6000km나 떨어진 반사막지대 벌판에 한인들은 주로 버려졌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인근 우쉬토베 지역,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남부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로 유명한 막막한 벌판이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카자흐스탄에 20,170가구 총 95,256명, 우즈베키스탄 16,272가구 총 76,525명으로 합계 171,781명이 강제이주를 당했다. 버려진 이들 한인의 삶은 비참했다.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고 배움의 길도 없었다. 국가기관 취업, 사회진출 기회도 아무것도 없었다. 집단수용소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주 다음 첫해에 7,000명이 사망했고 그 이듬해는 4,800명이 사망 했다. 그러나 이들은 첫해의 모진 학대와 고통을 이겨내며 농토를 개간하고 볍씨를 심어 대풍을 이루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3년 안에 자립기반을 일궈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소련이 해체된 후인 1993년 4월 1일, 러시아의회는 비로소 지난 과오를 시인하고 고려인 명예회복 법안을 채택했다. 물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치가 따른 건 아니지만 새로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은 고려인에게는 희망의 땅 연해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흘린 눈물을 세월의 격변에 씻어버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또 다른 역사를 써 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

동북아의 공존과 번영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고려인의 생명력은 ‘평화’를 피워 낼 것이다. 연해주는 미래를 향한 평화의 땅이다. 이는 한-러경제협력, 남북과 러시아 삼각협력 등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한 전진기지로 평화와 협력체제 구축의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희망의 씨앗을 옮겨와 심었고 빼앗긴 조국을 향해 다시 국경 너머 꺾이지 않는 저항의 씨앗을 실어 보냈다. 연해주! 이 땅에서 우리는 고난과 절망을 딛고 곳곳에 싹을 틔운 씨앗들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총 4박5일 블라디보스톡 여행 후기를 마친다.<끝>
   

러시아를 상징하는 정교회 전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4박5일여행을 마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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