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韓銀 총재, 옐런처럼 A학점 받으려면

[코리아데일리 정은채 기자]

조선일보가 최근 쓴 ‘동서남북’ 칼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칼럼을 인용하면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002년 4월, 취임 직후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뛰는 부동산을 잡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재정경제부에서 정부 추천으로 임명된 금융통화위원에게 금리를 올리지 말라고 전화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금통위원들이 반대하면 금리를 올릴 수 없다. 박승 전 총재는 재경부 장관에게 전화 걸어 항의했다. 고함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옆방 비서들이 놀라 총재실로 뛰어왔다고 한다(박승 전 총재 회고록).

▲ 특정기사와 관련이 없는 돈 다발(사진 코리아데일리 DB)

일주일 전,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단 워크숍에서 "외부 의견을 의식해 금리 결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며 대놓고 한국은행을 압박한 데 대해 '선(線)'을 그은 것이다. 박승 전 총재의 고함 반격에 비하면, 소심한 저항이다.

시장에선 한은이 '결정 장애' 때문에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정부의 금리 개입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 많다. 한은은 작년 12월 국회에 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올라도 가계와 기업이 대체로 감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올해 금리를 0.25%포인트씩 4차례 더 올려도 끄떡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3~4차례 금리를 올리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 금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은의 연내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올 상반기가 유력 시점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한은은 소극적인 금리 인상 신호만 몇 차례 줬을 뿐 실기(失機)를 거듭했다.

그 사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가격 급등의 책임을 박근혜 정부 내내 금리를 내린 한은 탓으로 돌렸다. 경제 환경도 악화됐다. 투자·소비·고용이 모두 나빠져 경기 하강 국면 조짐이 뚜렷해진 데다 올해 국내 성장률 예상치도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한은의 기준금리는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정책금리로 평가받아왔는데, 그 역할마저 예전 같지 않다. 작년 8월부터 이미 대출 금리가 1년 넘게 오르고 있는 게 이를 보여준다. 한은이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사이에 시중 대출 금리가 먼저 뛴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금융 불균형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금리 인상을 시사해 시장 분위기를 따라가는 모양새를 최근 취했다. 전(前) 정부 시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금리 인하 요청을 수용한 '척하면 척'을 제일 싫어한다는 이 총재가 이번에는 이낙연 총리와 김현미 장관의 금리 인상 주문을 수용하는 '제2의 척하면 척'을 하게 된 셈이다.

이 총재는 작년 12월 우수한 성적표를 들고 떠나는 재닛 옐런 당시 미국 연준 총재를 언급하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옐런은 월가의 이코노미스트 60%로부터 A학점(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받았다. 미 일간지인 시카고 트리뷴은 옐런의 주요 성공 요인으로 '과감한 행동력'을 꼽았다. 옐런은 금리 인상이 경기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기준금리를 5차례 인상했다. 그 덕에 미국은 17년 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고 뉴욕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성장세가 더욱 견고해졌다.

한국은행은 틈만 나면 '면밀한 모니터링'을 강조한다. 그런데 경제 상황을 기막히게 분석하지만 정작 방향 제시는 없다. '모니터링'만으로 할 일 다 했다는 분위기가 은행 내부에 팽배해 있다. 이래선 옐런처럼 A학점을 받는 한은 총재는 나올 수 없다. 물가, 가계부채, 고용, 부동산, 투자, 경기 등 고민해야 할 변수가 많지만, 한은만의 메시지를 시장에 명확하게 던지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한은을 신뢰하고, 한은의 존재감도 생길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국내 경제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