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연합뉴스

[코리아데일리=채민지 기자] 강민창 전 내무부 치안본부장이 지난 6일 오후 11시40분께 향년 86세 노환으로 숨졌다.

1933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강 전 본부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안동사범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전했다. 종전 후 경찰에 입문해 1986년 1월 제10대 치안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이듬해인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중 고문 끝에 숨졌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알려졌는데, 당시 고문치사 사건 당시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하려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씨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에게 물고문을 받고 사망한 사건으로 경찰은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지만, 이를 알게 된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박씨 사망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박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가 잇따랐고, 민주화 요구 목소리도 거세지면서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촉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강 전 본부장은 박 열사가 '목 부위 압박에 따른 질식사'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소견이 나왔음에도 언론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며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다.

이후 경찰이 사인 은폐를 위해 부검의까지 회유하려 한 사실까지 밝혀지며 강 전 본부장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 1993년 유죄가 확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고인이 사건 이후 경찰 내부에서도 행방을 알지 못할 정도로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매체를 통해 밝혔고, 강씨 역시 과거 한 언론를 통해 “관계기관과 대책회의를 해서 결정난 대로 따랐다”며 “나도 국가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강 전 본부장의 장례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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