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박태현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가 관심을 갖는 주요 재판을 두고 ‘거래’를 하려고 한 정황이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27일 대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 결과, 양승태가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타결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협상을 모색하는 문건이 당시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컴퓨터 문서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해당 문건에서는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대응 전략을 제기하면서 비서실장, 특보를 설득 및 활용하는 우회 전략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가 관심 갖는 주요 판결을 조사하고 판결 방향까지 연구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문건의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부분에 “주요 관심사항 관련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이라고 적혀있었으며, 이어 ‘최대관심사→한일 우호 관계의 복원’,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청구기각취지의 파기환송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쓰여있엇다.

문건에서 언급된 ‘일제 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은 2013년 대법원에 접수됐지만 “관련 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없이 처리하기 위해 심층 검토 중”이라는 명목으로 아직까지 대법 선고가 나오지 않았다.

징용 피해자 5명은 2000년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부산지법에, 일본제철 징용피해자 4명은 2005년 신일본주금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1·2심은 패소했으나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2012년 5월 최초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사건을 서울·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했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3년 7월10일 서울고법은 대법 판결대로 원고 1인당 1억원의 손해배상을, 2013년 7월30일 부산고법은 원고 1인당 8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문건에 쓰인 대로라면 박근혜 청와대는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고법 판결들의 ‘파기’를 기대했고, 행정처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로 다시 심리하게 된 미쓰비시와 신일본주금 징용 사건을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길게는 2000년부터 18년째 진행된 사건에 고령의 당사자들은 최종 판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변호사협회도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판결을 신속히 해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한·일 양국의 법치주의를 확장·강화시키길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대법원에서 이미 한번 판단한 사건인데 선고가 미뤄지면서 당사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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