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화면 캡쳐

[코리아데일리 김민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분노’, ‘모독’ 등 단어를 사용한 것을 두고 몇몇 언론은 이를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라고 표현해 이날 이 단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린의 사전적 의미는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되며 임금님의 노여움을 비유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흔히 ‘역린’은 살아있는 권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간의 감정 섞인 말들이 오가는 것이 바로 이런 정치적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전국(戰國) 시대(時代)에 만들어진 ‘한비자(韓非子)’ 설난편(說難篇)에는 “용은 상냥한 짐승이다. 가까이 길들이면 탈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비늘이 거슬러서 난 것이 하나 있는데 만일 이것을 건드리게 되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만다. 군주(君主)에게도 또한 이런 역린이 있다”라는 글이 있다. 이때부터 이 말에 연유하여 군주의 노여움을 ‘역린’이라고 표현했다. ‘역린’은 배우 현빈이 정조대왕으로 분한 2014년 개봉한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18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성명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 입장을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데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분노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페이스북에서도 볼 수 있다. 박수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분노'를 말했다"며 "제가 대변인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문 대통령이 직접 '분노'라는 단어를 이용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같이 강한 어조로 말한 이유는 전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한 것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청와대로서는 문 대통령의 언급이 마치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작용하는 것은 경계하려는 분위기가 읽힌다. 향후 정치공방 속에서 검찰에 의한 적폐청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전 대통령은 일단 측근들에게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에 ‘무대응’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미 측근들은 ‘노무현 정부 파일’까지 거론하며 전세 진용을 갖추는 모양새다. 실제로 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의원은 이날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이명박 정부도 5년 집권했고, 집권이란 모든 사정기관의 정보를 다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 우리라고 아는 게 없겠느냐”며 일전 불사를 예고했다.

검찰 소환 혹은 최악의 경우 구속 가능성까지도 대비하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 전 대통령 측이 이른바 ‘노무현 파일’ 폭로 등 극단의 선택을 할 경우 정국은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조여가는 검찰 수사와 이 전 대통령 측의 반발을 계기로 정국에는 전운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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