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화면 캡쳐

[코리아데일리 김민정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직속의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결과 보고서의 핵심은 기존 합의에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강 장관은 “이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 지원 단체와의 소통을 통해 (정책을) 정립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9일 발표도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밝힌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부의 처리 방향’은 실질적으로 재합의 및 파기가 힘든 상황에서 일본 측에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선에서 발표됐다. 강 장관은 입장문에서 “(향후) 피해자, 관련 단체, 국민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면서 피해자 중심의 조치들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의견 수렴이 다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정부 입장을 내놓았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강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도 전혀 받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기자회견에서 직접 입장을 밝히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강 장관이 발표를 서둘렀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가장 큰 관심사는 일본이 합의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약 108억원)의 반환 여부였다. 이는 일본 측에 사실상의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알리는 실질적 방법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예산으로 10억엔을 마련하고 이 돈의 처리방안을 일본과 추후 협의키로 했다. 일본에 반환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의 반환 요구를 완전히 저버린 것도 아닌 절충선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즉각 반환을 요구해 온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나치게 소극적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정부는 일본 측 출연금 중 이미 지급된 40억여원, 재단의 계정에 있는 60억여원은 그대로 둔 채, 행정절차를 통해 예비비로 10억엔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 돈을 어떻게 쓸지는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 용처가 결정될 때까지 제3기관에 예탁해 두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그간 꾸준히 논의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체에 대해서도 피해자, 관계기관, 국민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결정하겠다는 선에서 멈췄다.

강경화 장관은 이날 “2015년 합의가 양국 간에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를 감안하여 우리 정부는 동 합의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대해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다만 일본이 스스로 국제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기대한다”며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한결같이 바라시는 것은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라고 강조했다.

일본 측의 추가 사죄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본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15년 합의 당시 나온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총리의 사죄’도 한·일 간 협상의 결과로 겨우 얻어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사과가 없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출연금 10억엔을 반환하냐고 묻자 외교부 당국자는 “가정에는 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재협상도 아니고 기존 합의에 대한 착실한 이행도 아닌 정부의 입장은 적절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모두에게서 신뢰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일본은 기존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에 집중하고 있다. 만일 재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에 따라 이 부분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국내의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역사 문제 해결과 한·일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할 것”이라며 기존의 ‘투트랙 외교 기조’만 재확인했다.

강 장관이 발표 말미에 강경화 장관은 또 “오늘 말씀드린 내용이 피해자 여러분들께서 바라시는 바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점에 대해 깊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정부는 성심과 최선을 다해 피해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추가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우리 정부가 이렇게 발표함에 따라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죄와 반성 표명, 피해자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치유 등을 위한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 출연,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등을 담은 위안부 합의는 일단 파기되지 않고 남게 됐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재협상이나 파기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이날 우리 정부의 발표와 관련, “한일 위안부 합의를 실행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시 항의할 방침을 밝히는 등 일본 정부는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향후 대응 수위에 따라 위안부 합의 처리 문제가 향후 한일관계의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지원단체에서도 재협상을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대해 “재협상 포기는 기만행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설익은 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반응들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부처 간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후속 처리 방안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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