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코리아데일리 김민정 기자]

1970~1980년대 연극의 메카로 불리던 서울 중구 세실극장이 7일 연극 ‘안네 프랑크’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1976년 개관한 이후 42년 만,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지 5년만이다.

폐관 사유는 최근 극심해진 운영난이다. 세실극장은 임대료 약 1300만원과 운영비 2000만원을 매달 지불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5년전부터 극장을 운영해 온 김민섭 세실극장장은 “1,300만원에 달하는 월세에 인건비와 각종 운영비만 해도 매월 2,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데 매일 두 차례씩 365일 공연을 올려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지난해 여름 건물주인 성공회 측에 임대계약 종료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운영 중단 결정을 하기까지 김 극장장 역시 숱한 고민의 밤을 보냈다. 그는 “극장 운영을 맡게 된 당시만 해도 이렇게 역사적인 극장을 내가 책임지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며 “10년은 제대로 해 볼 생각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1976년 대한성공회 제1회관에 문을 연 극장은 일제강점기 대한성공회 4대 주교였던 세실 쿠퍼의 이름에서 극장 명칭을 따왔다. 건축가 김중업이 부채꼴 모양의 연극전용 극장으로 건축했으며, 개관 당시 320석의 객석을 갖춰 소극장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1977년 한국연극협회가 극장을 대관해 연극인회관으로 사용했으며, 1980년까지 4년간 5회에 걸친 대한민국연극제를 개최했다. 세실극장은 이때부터 1970년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연극계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극장은 1981년 민간단체 ‘마당’에게 인수됐고, 1997년까지 극단 전속 단체공연 위주로 운영됐다. 이곳은 1998년 IMF 때 재정난으로 운영이 불가피해 1년 휴관했으며, 1999년 극단 ‘로뎀’에게 다시 인수됐다. 로뎀에 인수된 후에는 국내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쉽을 도입했다. 네이밍 스폰서쉽이란 기업과 제휴해 극장 명칭에 후원 기업의 이름을 넣는 방식이다. 극장은 제일화재 해상보험·한화손해보험과 제휴를 맺고 ‘제일화재 세실극장’ ‘한화손보 세실극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네이밍 스폰서쉽 기간에는 기업 후원 덕분에 극장의 대관료가 낮아졌다.

2012년 극장은 한화손해보험과 스폰서쉽 만료로 ‘세실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됐고, 김민섭 극장장에게 인수됐다. 세실극장은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서울시 미래유산은 서울시가 지정하는 기념물·장소 등을 통칭하며,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양식들이다. 그러나 극장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시로부터 별다른 재정적 지원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측과 서울연극협회는 연극계 현실에 탄식하면서도 서울시에 아쉬운 감정을 보였다. 협상 과정에서 미래유산이라는 점은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김민섭 세실극장 극장장은 “서울시로부터 협상을 중재하거나 재정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 극장장과 서울연극협회 관계자는 “미래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시가 특별히 홍보를 해준 적도 없다. 이런 공간의 공공성을 지켜주는 데 시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 극장장은 세실극장을 숱한 부침의 역사에서 건져낼 해법은 “공공극장 전환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세실극장은 극장 전용 건축물로 지어진 몇 안 되는 근현대 건축물로 서울시가 폐관 위기에서 살려낸 삼일로 창고극장 이상의 역사적·건축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며 “공공극장으로 전환해 대관료를 낮추고 양질의 공연을 꾸준히 선보인다면 다시 한 번 ‘한국 연극 1번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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