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유럽 발트해에 면하여 있는 공화국. 웬 화제

[코리아데일리 강동우 기자]

에스토니아 23일 주목을 받는 이유는 크리스마스와 얽힌 유례 때문이다.

에스토니아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공화국(Republic of Estonia)이며,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다. 발트 3국의 하나로, 해안선의 길이는 3,794㎞이다.

면적은 4만 5227㎢, 인구는 126만 5420명(2015년 현재), 수도는 탈린(Tallinn)이다.

인구 구성은 에스토니아인 65.3%, 러시아인 28.1%, 우크라이나인 2.5%, 벨라루시인 1.6% 등이다. 언어는 에스토니아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루터교)이고, 러시아정교도 믿는다.

▲ 에스토니아 시내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기후는 다소 서늘한 날씨이며, 여름에는 낮 길이가 20여 시간이나 된다.

2017년 현재 현재 국민총생산은 259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9719달러이다.

역사는 발트해 연안에 정착하였던 에스토니아인들은 바이킹에 이어 12세기부터 게르만인들의 침략을 받았다. 1561년 게르만인들의 통치가 끝나면서 러시아의 이반4세의 침공이 있었으나 격퇴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초 러시아의 피터대제가 다시 침공해 와 1721년 러시아영토로 복속되었다.

1918년 브레스트-리토브스크(Brest-Litovsk) 조약으로 독일에 할양되었으나 2년도 채 되지 않아 독일의 패망으로 독립국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 뒤 20년 동안 시민사회로서 뜻깊은 정치학습기를 보낼 수 있었으나, 1940년 8월 23일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다시 소연방에 병합되었다.

1985년 고르바초프정권이 들어서자 소련의 개방분위기를 이용하여 에스토니아 지식인들은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고, 1988년인민전선을 결성하면서 민족주의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같은 해 11월 11일인민전선은 1940년 7월 22일 소련의 압력으로 에스토니아 최고소비에트가 채택하였던 소련 가입선언이 무효임을 공표하였다.

1990년 3월 에스토니아공산당은 모스크바중앙당과 결별하기로 결정하고 5월 8일 에스토니아공화국으로 국명을 개칭하였다. 1990년 5월 ‘독립공화국의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과도기’의 시작을 공포하였으며, 1991년 9월 6일 소련에서 독립을 쟁취하였다.

당시 자국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던 수만 명의 소련군 병력의 무력시위 앞에서도 묵묵히 반폭력적 독립운동을 추진해 온 에스토니아인들은 다른 발트계 민족들과 함께 1991년 12월 말 소연방을 해체시키는 기반을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10월 17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8년 현재 주 핀란드 한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국은 2001년 8월 사증면제 협정과 문화교육학술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편 한국 유학생이 쓴 일지에 의하면 주로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우리와 달리, 해외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큰 HOLIDAY다. 그렇기에, 1월에 아직 시험이 남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진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지그들과, 이곳과 헤어지는 중이다.

타르투를 떠날 생각에 오늘은 뭔가 쓰고 싶어 그냥 끄적끄적. 적는 다.

보름간의 서유럽 여행을 끝내고 에스토니아에 들어왔다탈린에서 타르투 오는 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창문 밖으로는 나무들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래도 29인치 캐리어를 들고 옮겼다. 반 학기 휴학을 하고, 7차 학기로 조금은 늦게 가는 교환학생이라서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그거 놀러 가는 건데 뭐 도움 되겠냐?" "지금은 인턴을 해야 할 시기 아닌가?" 에스토니아? 유명하지도 않은 나라에? 스펙으로 쳐주지도 않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경험한 에스토니아는 지상의 낙원이고 학생에게는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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