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 창문이나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들도 가족의 품처럼 포근

[글: 김기영 영화감독]

영화 가족의 탄생은 화면 자체가 따뜻하고 온화했던 영화로 기억에 남아있다. 기차 안 창문이나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들도 가족의 품처럼 포근했다.

영화 가족의 탄생 줄거리 & 결말

누가 보면 연인 사이라 오해할 만큼 다정한,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남매 미라(문소리)와 형철(엄태웅). 인생이 자유로운 형철은 5년 동안 소식 없다 불현듯 누나 미라를 찾아온다.

인생이 조금은 흐릿한 20살 연상녀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똑 부러지는 인생을 꿈꾸던 미라는 사랑하는 동생 형철 그리고 동생이 사랑하는 여인 무신과의 아슬아슬,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 영화 스틸

한편, 리얼리스트 선경(공효진)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김혜옥)때문에 인생이 조용할 날이 없다. 사랑이라면 만사 오케이인 엄마의 뒤치다꺼리 하다 보니 이리저리 치인 기억에 사랑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선경. 남자친구 준호(류승범)와의 애정전선에 낀 먹구름도 맑게 개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딸의 연애가 위태위태한데 매자는 왜 또 선경을 찾으시는지..

그리고 사랑 때문에 인생이 편할 날 없는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이 있다. 얼굴도 예쁘고 맘도 예쁜 채현이 넘치는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나누어주다 보니 정작 남자친구는 애정결핍증에 걸리고 만 기구한 커플이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경석. 참고 참다 둘 사이에 강수를 놓기로 하는데..과연 채현이 그 수에 걸려들까?

하루가 멀다 하고 웬~수처럼 으르렁대는 이들.. 사랑만으로도 복잡한데 이 7명은 여기저기서 또 얽히고 설킨 스캔들로 인생 들썩이기 일쑤다. 어쩌다 저렇게 엮이는지, 살짝 피곤해지려고 할 때. 꿈에도 생각지 못한 하나의 비밀이 이들에게 다가오는데...라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좋게 느껴졌던 이유는 우선 요즘 접하고 한창 날리고 있는 영화들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감성을 느끼고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진부하지 않고 왁자지껄 소란스럽지만 경박하거나 투박하지도 않다. 가족이 꼭 혈연관계로 이어져야 하고 든든한 가장이 버팀목처럼 지켜줘야 한다느니의 뭐 그런 복잡하고 답답한 가족상을 훌러덩 벗어버린 아주 나름대로 시원하고 반항적인 영화였다.

가족의 대한 현대적인 정의,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머릿속에 가족이라는 개념을 이리저리 섞어 새롭게 창조한 따뜻하고 정감어린 新 가족의 탄생이다. 아직도 틀에 박혀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은 상당히 꺼릴 내용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막 나가는 영화", "세상이 어찌될라고" 등등의 여러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바뀌어 가는 세상. 틀에 박혀버린 머리도 한바퀴 휘휘 돌려주는 것도 사는데 더 편할 듯 하다.

난 두 번째 에피소드를 보면서 "엄마"를 많이 생각했다. 비록 극중 엄마의 성격과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그 확연하게 다름으로서 오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커졌다. 극중의 매자처럼 자유로운 사랑도…….

아니 그것보다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계시는 엄마가 스크린에 겹쳐졌다. ‘엄마’ ‘엄마’ 조용히 생각해보면 주르륵 눈물이 나오는 단어이고 대상이다. 암튼 이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장면도 두 번째 이야기고 가슴 졸였던 부분도 두 번째 이야기이다. 엄마라는 대상의 한없는 사랑과 그 희생에 대해서…….

이 영화의 관람 후기는 ‘사랑에, 스캔들에, 바람 잘 날 없는 이들 과연 찬란한 행복이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 주요 출연진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 선경(공효진)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두고 가셨던(두고 가셨다기 보다는 거의 딸에게 내쫓기면서) 가방과 씨름하는 장면이다.

번호를 몰라 연신 가방을 흔들며 번호 맞추기에 열중하다 우연히 가방이 열리게 되자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자신의 어릴 적 물건들을 발견한다.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엉엉 크게 울어버리는 선경(공효진)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모질게 대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울고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이 미워서 울고 엄마의 따뜻함이 한없이 애타서 울고. 이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을 치며 더 크게 운다. 나 또한 엄마에게 잘하지 못했 던 죄송함에 울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세 번째 내용인 경석이 채현에게 헤어지자고 한 뒤 다시 처음 만났던 그 상황을 똑같이 만들어 채현이 탄 기차 옆자리에 앉아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을 그린 장면이다. 결국 일은 잘 풀리지 않고 티격태격하다 화가 풀리지 않은 채현은 기차에서 내리고 무작정 뛴다. 쫓고 쫓기는 판이 되어버렸을 때 길 건너편의 채현을 경석이 쫓아가다가 다가오는 덤프트럭을 보지 못한 채 뛰어 내리는 상황. 놀라고 당황한 채현이 덤프트럭 쪽으로 뛰어와 멍하니 서있는 경석을 힘껏 껴안는 장면은 둘의 사랑이 가장 예뻐 보였던 장면이다. 다음에서 어렸을 때부터 차고 있었던 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도 참 귀엽고 앙증맞았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무리 지어주는 가족의 탄생의 비밀들, 미라(문소리)와 무신(고두심)의 정말 아줌마스러운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대문 밖에서 우연히 만난 경석을 미라가 반갑게 맞이할 때 장면은 실실 웃음을 흘리게 만들었다. 미라가 경석을 자꾸 집에 들어가서 밥 먹고 가라고 할 때 옆에 서 있던 채현이 “우리 헤어졌어.” 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 상황에서 보는 이의 머리를 스치고 간 다음 상황은 당연히 어색하게 뒤돌아 가는 경석이나 당황해하는 미라가 나올 테지 라고 예상을 하고 있을 찰나!. 미라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근데 뭐~ 야! 헤어지면 뭐 밥도 안 먹니? 야! 헤어지고 나서도 세끼 잘 먹고 잘살고 그래. 그게 뭐 대수.”

이런 식으로 나오니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정말 영화 독특하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보는 사람에게 날리는 감독의 대단한 한 방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한방을 맞는 기분은 즐겁다.

암튼 오랜만에 새로운 감성들과 상큼한 기운을 듬뿍 받았다. 가족에 대해 새롭게 이런저런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비록 난 혼자 보았지만 분명 많은 사람과 함께 보면 이 독특하고 톡톡 튀는 영화가 더욱 더 가슴에 와 닿고 오래 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발랄하고 상큼한 이런 인간미 넘치는 영화들을 많은 사람들과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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