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3일 ‘백령도’ 남북 분단의 현주소 얽힌 눈물의 전설

[코리아데일리 강유미 기자]

KBS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북한까지 불과 1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백령도의 72시간이 방영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백령도는 북한의 장산곶 남쪽 휴전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km 떨어져 있다. 면적 46.3km2, 해안선 길이 52.4km, 최고봉 184m, 주민은 3,177가구 5,657명, 초등학생 219명, 중학생 85명, 고등학생 102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아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난 결과, 8번째 크기의 섬이 되었다 한다.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원래 이름은 곡도였으나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 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옛날 서해도 어느 고을의 한 선비가 사또의 딸을 사모하여 둘이 장래를 약속했다.

▲ 백령도 섬 전경 (코리아데일리 DB)

이를 안 사또가 딸을 외딴 섬으로 보내버리자 선비는 사또의 딸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어느 날 하얀 학이 흰 종이를 물어다주고 가는 꿈을 꾸어 놀라 깨어보니 정말 종이에 주소가 적혀 있었다. 선비는 주소대로 장산곶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사또의 딸을 찾아 회포를 풀며 단란하게 살았다는 전설인데, 그 섬을 백학(白鶴)이 알려주었다 하여 백학도라 했고 오늘날 백령도로 불린다.

서해안 최북단의 섬인 백령도에서 2010년도 3월에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천안함 포격 사건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도 줄어들었지만 지금은 점차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평을 많이 하지만 풍랑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어쩔 수가 없어서 이곳 주민들은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배가 떠나는 날이나 들어오는 날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자녀들을 육지로 보내는 부모, 휴가를 떠나는 군인들, 군대에 있는 애인이나 자녀를 면회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공무나 여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여객선 터미널에 붐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떠나가는 여객선이 기적소리를 내면, 점점 멀어져 가는 배를 향하여 손을 흔든다. 오전 7시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다음, 오후 3시가 넘으면 다시 인천에서 수많은 승객과 짐을 싣고 여객선이 들어온다.

선차장에서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 코흘리개 아들이 아버지를 마중 나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게 주인들은 주문한 짐을 받으려 나와 있고, 휴가 갔다 돌아오는 군인들은 부대에서 차량을 배차해 주기에 이들을 실으려고 대기해 있는 모습이 다른 지방과 다르다. 택시와 3대의 버스도 이 시간에는 만원을 이룬다. 마을버스가 들어오기 전에는 대민 지원 차원에서 해병대가 무임 운행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20km가 넘는 거리를 경운기를 타거나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 남북 긴장의 끈이 상존해 있는 백령도 섬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그 당시에는 인천에서 193km 거리를 12시간이나 배를 타고서 여행을 해야 했다. 북한 땅 장산곶에서 배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섬이다. 50-60년대에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면 여객선과 어선들이 바닷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북으로 향하다가 기겁하고 돌아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백령도는 서해상을 따라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군사적인 요충지가 되어 전략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그래서 6.25 전쟁 당시 이 섬을 거점으로 반공유격대의 활동을 한 승전신화가 많은 곳이다. 백령도는 평양-해주 길목에 위치해 있다.

백령도는 북한이 남침을 감행할 경우, 수도권 서북방을 방어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인천에서 뱃길로 193km 떨어져 있지만 북한 장산곶과는 불과 16km로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백령도는 북한 지역 동향과 평양-해주간 항로를 감시할 수 있다. 백령도뿐만 아니라 대청도와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5도는 북녘 땅인 서해도와 직선거리가 10~18k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아주 가깝다.

백령도가 우리에게는 최고의 요충지이지만 북한에서 볼 때는 가슴의 비수와 같다. 또한 연평도에서는 북한의 최남단에 있는 해주의 해군기지를 곧바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서해5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전략 요충지이다. 북한은 이런 이유 때문에 틈만 나면 서해5도에 대한 도발을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트집을 잡고 있다.

백령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군 병력이 충원되었다고 한다. 군인과 그 가족을 합치면 주민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지리적 요건과 군사적인 요충지인 백령도는 전략적인 가치가 대단히 크다. 한국전쟁 당시 휴전을 앞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이 섬을 거점으로 북한에 침투한 반공유격대의 승전 신화가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백령도는 지리적 거리도 아주 멀지만 심리적 거리는 더 먼 편이다. 그 땅을 밟아보는 것도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백령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해병대’이다. 인천-백령도행 여객선을 타면 배 안에는 승객과 해병대 군인들이 반반이다. 배에서 만난 해병대원들. 같은 해병대이지만 군복이 서로 달라서 물어보니 신병들과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는 병사들의 복장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항상 완전 무장한 해병대가 섬 곳곳 초소에서 백령도를 지키고 있다. 늘 긴장감이 감도는 섬이기에 선뜻 여행지로 선택하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마음 속에는 늘 먼 타국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백령도에 오기까지는 그랬다. 배가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에 닿자마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 대의 관광버스는 호기심에 가득찬 여행객들을 가득 싣고 떠나기 시작했다.

백령도에는 북한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는 레이더 기지가 분주히 움직인다. 북한기가 상공에 침범하면 단번에 격추를 당하기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깎아지른 해안 절벽 곳곳에 큰 입을 벌리고 있는 해병대의 포구가 분단의 현실을 아프게 했다. 백령도는 24시간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초긴장 상태의 지대이다. 북한 땅의 코앞에 있는 이 섬이 대한민국 수중에 들어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목에 걸린 가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늘 기회만 있으면 가시를 빼려 하는 것 같다.

또 백령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울릉도처럼 기독교인이 많다는 점이다. 주민의 70-80%가량이 기독교 신자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20% 정도인데 이것은 엄청난 비율이다. 인구가 4천여 명인데 교회는 무려 12개에 이른다.

조선시대에 중국의 육로를 통한 포교가 막히자 선교사들은 바닷길을 이용해 풍선을 타고 자연스럽게 커다란 섬 백령도에 오게 된 것이다. 백령도에는 1832년 선교사가 처음 들어와 활동을 했다. 1898년 조선정부는 전도와 교회 설립의 제한을 해제하여 백령도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과 유배인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이 한학 서당에 중화동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1899년 이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서해도 소래교회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아 초가 6칸(39.6 제곱m) 규모로 중화동교회를 세웠다.

백령도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1846년 백령도를 통하여 입국을 준비하던 중 관군에게 체포되어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가 개척한 바닷길을 통하여 프랑스 신부인 선교사 17명이 입국하기도 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당시 선교사 6명을 성인품에 올렸다. 백령면 진촌리에 있는 백령 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한편 KBS 2TV에서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3일’은 매주 일요일 밤 10시 40분 방송된다. 토요일에 재방송되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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