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중국 현지서 한국 음악 라디오 방송 시작...K-POP 전도사 역할 톡톡
설운도·현철 매니저부터 아이돌 음반 제작자까지 '만능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데일리 노이슬 기자] 정원수 작곡가는 'K-POP'과 '한류'의 시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자 94년 중국 최고의 록커 최건 내한을 성사시켰고, 한중수교 4주년을 기념해 북경에서 최초의 한류 공연 중한우호의밤을 개최했다. 이는 중국 CCTV에 방영돼 전 중국에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현재는 케이팝스타(K-POP STAR) 대표이사 이면서 한국방송 가수 연합회 중앙회장 이기도 한 정원수 작곡가는 설운도의 '미련의 부르스' 박상철 '너무 예뻐', '울 엄마' 서주경 '반칙', 오승근의 '하늘의 여자' 고영준의 '나 믿고' 오은주의 '사랑의 포로'등 많은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했다.​특히 중국가수 진웨뉘의 '북경 아가씨'라는 곡은 전 중국에 많은 히트를 시켰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만 500여 곡이며, 발표한 곡만 100여 곡에 달한다. 최근에는 조항조의 '남이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79년 부산에서 신중현 밴드가 날리던 시절, 원수와 파이브스타를 결성해 기타 겸 리드싱어로 활약한 정원수 작곡가는 80년 초 '조심조심'이라는 노래로 방송가에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함께 나왔던 설운도, 현철을 만나 가수가 아닌 매니저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방송 MC뿐만 아니라 아이돌 제작까지 하며 그야말로 대활약하고 있다.당시 함께 나왔던 설운도, 현철을 만나 가수가 아닌 매니저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방송 MC뿐만 아니라 아이돌 제작까지 하며 그야말로 대활약하고 있다.

Q. 작곡을 시작한 계기

경남 고성 시골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 전기를 접했다. 트럭 운전수였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수가 되는데 이바지한 인물이 그보다 어린 매니저였다는 사실을 알고 가수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고, 음악평론, 작곡법 이론 등 음대 서적들을 읽으며 독학했다. 모든 이론을 마스터한 후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에 통발 공장이 많았다. 근데 저녁에는 공장이 빈다. 그 공장에서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들어서 연습했었다. 드럼 깡통을 두드리고, 오르간, 기타를 사서 연습했다. 발음도 안 되는 팝송 부르고 그랬다.

Q. 트로트 장르 외에 어떤 곡 작업을 하는지

중학생 때 모든 이론을 마스터한 후 처음 만든 곡이 '얘야'와 '미련의 부르스' 같은 트로트였다. 그때 작곡한 '미련의 부르스'는 20년 뒤 설운도가 부르면서 히트하게 됐다. 트로트뿐만 아니라 로고송, 단체 노래도 많이 만든다. 시대를 담은 노래도 만들고 국가 행사곡, 스포츠 음악 공모에 당선되기도 한다. 지역 도가도 만든다.

Q. 주로 언제 악상이 떠오르는지

작곡을 해야겠다 마음먹지 않는다. 오히려 놀면서 쓴다. 주로 지방 갈 때 드라이브를 하면서 많이 작곡한다. 재래시장 같은 시끄러운 곳에 가도 악상이 떠오른다. 고독하게 곡을 쓰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때도 곡을 만든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몽해서 '봉화산 부엉이'라는 추모곡을 만들기도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결정되던 2012년 유치축하곡 '올림픽코리아'도 만들었으며, 현재 평창동계올림픽 행사와 방송에서 많이 불려지고 있다.

Q. 설운도, 현철이 가수왕이 됐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당시 시골 논두렁에 혼자 앉아서 기타 치면서 노래를 만들었었다. 작곡하면서 혼자 다짐했었다. 내 곡을 부르는 사람을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아티스트가 가수왕을 수상하면서 나도 함께 스타덤에 올랐었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가요계에 발을 디딘 후 한 번도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항상 기타를 들고 작곡하고 악상이 떠 오르면 작곡을 하고 있다. 잠도 많이 못하고 바쁘다. 하지만 지금은 후배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현재 아이돌 제작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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