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권불50년 막 내린 시대 인생챕터 전격조명

[코리아데일리 강동우 기자]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5) 총괄회장이 검찰로부터 구형을 받으면서 70년에 걸친 '신격호 시대'가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롯데그룹의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이 1일 열린 롯데 경영비리 관련 재판에서 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받았고 신 총괄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최후변론문을 통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그의 노후는 씁쓸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 총괄회장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이틀 전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같은 형량이기에 롯데의 운명은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 신격호 회장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검찰의 횡령, 배임죄 기소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신 총괄회장 측 조문현 변호사는 이날 최후변론을 통해 "2세 경영인인 신동주에게 보수를 지급한 행위는 지극히 정당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주목을 받는 것은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서미경, 장녀 신영자 등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등을 임대한 데 대해서도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 점이다.

신 총괄회장의 변호인 측은 "피고인은 서미경, 신유미(신격호·서미경의 딸), 신영자에게는 백화점의 식음료 매장이나 롯데시네마 매점을 임대해주는 방식으로 적법하게 사업을 할 기회를 제공했고, 그들 스스로 노력해 성과를 얻도록 독려했던 것"이라면서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공정거래법상의 행정제재를 가할 수는 있을 수는 있으나, 배임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설명해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한편 1일 법정 구두진술을 통해서는 "피고인이 회사를 사유화해 사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동주와 신동빈의 희생 하에 한국 롯데그룹을 성장 발전시켰다"면서 "피고인의 애국심과 경영철학을 욕되게 하지 말아주시고 경제계의 거목이 조용히 물러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신 총괄회장은 일본 도쿄 신주쿠 하쓰다이 본사에서 이번에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이 새 이사진에 들어 있지 않은 인사안을 의결했다. 롯데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이사 임기 만료에 따라 이사직을 퇴임하고 명예회장에 취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생 유전을 살고 있는 신격호(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 롯데 총괄회장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 경남 울산에서 신진수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40년 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와세다대 부속 와세대 실업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48년 도쿄에서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했다. 껌 장사로 시작한 롯데는 초콜릿, 캔디, 아이스크림 등 히트상품을 통해 굴지의 종합 제과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에서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59년 한국에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사를 세웠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67년 4월 자본금 3000만원으로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제과는 고품질 껌을 선보여 히트를 쳤고, 이후 '왔다껌'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등 히트 상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전 국민 사이에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란 CM송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72년 이후에는 '빠다쿠키' '코코넛바' 등 비스킷 제품도 불티나게 팔렸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74년과 77년 칠성한미음료, 삼강산업을 각각 인수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완성했다. 73년에는 지하 3층, 지상 38층, 1000여 객실 규모의 소공동 롯데호텔을 선보여 관광업에 진출했다.

79년에는 소공동 롯데백화점을 개장하면서 유통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78년 평화건업사를 인수해 현재 롯데건설로 키워냈고, 79년 호남석유화학 인수 등을 통해 건설과 석유화학 분야에도 발을 뻗었다.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치며 M&A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롯데전자공업, 프로야구단 롯데오리온즈(현 롯데마린스), 롯데리아 등을 거느린 10대 재벌로, 국내에선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생활에서도 드라마틱했다. 20대에 요절한 첫 번째 부인 노순화씨 사이에 장녀 신영자, 일본 동거인 시게미쓰 하쓰코 사이에 장남 신동주 차남 신동빈, 제1회 미스롯데 출신 탤런트 서미경 사이에 차녀 신유미를 슬하에 뒀다. 37살의 나이차를 뛰어넘은 서미경과의 결합은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신 총괄회장은 특히 62세에 얻은 막내딸(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을 아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홀수 달에는 한국에,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란 별명을 얻고, 2006년 포브스지 선정 세계 136위 부호(일가 재산 45억 달러)에 랭크되는 등 빛나던 ‘신격호 시대’는 2015년 7월 불거진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으로 말미암아 회복하기 힘든 균열이 생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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