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출연원 대부분 사망 주인공 신성일과 엄앵란 생존

[코리아데일리 곽지영 기자]

17일 EBS 한국영화 특선 시간에 방영되는 ‘맨발의 청춘’ 얼마전 작곡한 김기덕 김독의 연출작으로 젊은 남녀의 신분을 초월한 운명적인 사랑이 현실에서 외면당한 채 결국 자살로 마감된다는 영화 내용이다.

“맨발로 왔다가 맨발로 가는 청춘”을 내세운 주제에 청춘영화의 대명사로 알려진 신성일·엄앵란 출연. 두 남녀를 둘러싼 인물처리에서 서로 다른 신분을 표현하기 위해 아가리 역의 트위스트 김이 두수의 시체를 거적때기로 덮은 채 리어카에 싣고 가는 장면과 요안나의 시체가 중형 승용차에 실려 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러한 비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명장면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의 나카히라 코우의 ‘진창투성이의 순정(泥だらけの純情)’(1963)을 서윤성이 각색한 것으로 일부에서 일본영화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보도에 따르면 “원작자 승인을 받은 것”(새 영화-「신·엄 콤비의 순애보/김기덕 감독 ‘맨발의 청춘’」 서울 64. 3. 4, 영화평-「정사로 끝맺은 애련비극/맨발의 청춘」 조선 64. 3. 10)으로 되어 있다.

▲ 맨발의 청춘 포스터와 얼마전 작고한 국내 최고의 명장 김기덕 감독 당시 촬영 모습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그러나 일본영화 ‘진창투성이의 순정’에서 남자 주인공의 다친 손가락을 여주인공이 붕대로 감아주는 장면, 남녀 주인공이 종이학을 접어 비교하며 웃는 장면 등이 거의 똑같이 등장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 최희준이 부른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주제가는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거머쥐며 전국적으로 히트했다. 트위스트 김(김한섭)의 스크린 데뷔작이지만 이미 근 작고했다.

개봉 첫날부터 광화문 조선일보사 옆 아카데미 극장에는 아침부터 입장권을 사려는 관객들의 행렬이 덕수궁 앞까지 줄을 이었고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에피소드가 회자되고 있다. 서울 인구 350만 명에 관람인원 21만 명(서울).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100선’ 선정된 명화이다.

영화 맨발의 청춘 줄거리 & 결말

조두수(신성일)는 그저 건들거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거리 깡패일 뿐이다. 그런 그가 외교관의 딸이자 상류사회에서 자란 요안나(엄앵란)를 만나자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제 두수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요안나 없이는, 요안나는 단순하면서도 열정적인 두수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이들의 사랑을 눈치챈 요안나의 어머니(이민자)는 딸을 설득하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요안나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요안나는 두수의 신분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어머니에게 두수의 일자리를 부탁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요안나를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보내려 든다. 하는 수 없이 집을 뛰쳐나온 요안나는 두수와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두 사람이 맺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시골의 한 허름한 창고에서 약을 먹고 동반 자살한다. 그날따라 함박눈이 하얗게 내리는데 두수의 시체는 두 발을 드러낸 채 리어카에 실려 나가고 요안나의 시체는 꽃으로 장식된 승용차에 실려 묘지로 향한다.

한편 1964년에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 만들어진,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의 노래로, 최희준이 불러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이 주제가는 2/2박자 세 도막으로 이루어진 단조의 노래이며, 전주와 간주는 할리우드 갱 영화를 연상시키는 재즈 분위기의 색소폰 선율이 금속 질감의 비트에 맞추어 연주된다.

이 노래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하여 1960년대 초까지 이어온 손석우 중시의 밝고 명랑하고 단정한 스탠더드 팝의 흐름을 탈피하고, 재즈와 블루스 등이 가미된 다소 복잡하고 풍부한 느낌의 스탠더드 팝으로의 방향전환의 계기가 된 노래이다.

이 노래를 주제가로 쓴 영화 「맨발의 청춘」은, 곱게 짜란 외교관의 딸과 뒷골목 범죄단의 말단 조직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 초의 가부장제적 가족의 복원을 그리는 건전한 영화의 흐름을 뒤엎은 이 영화는, 미국의 제임스 딘 영화나 일본의 태양족 영화의 영향을 받은 ‘청춘영화’ 붐을 일으키며 신성일·엄앵란 콤비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대중가요계에서도 이 노래를 계기로 손석우의 명랑하고 단순한 음악의 유행이 저물고, 재즈의 어둡고 향락적인 분위기를 머금은 이봉조와, 화려하게 아름다운 비극성을 지닌 길옥윤 등의 작품이 유행하는 1960년대 말까지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가사에서는 트르토가 지닌 패배주의적이고 소극적인 신파적 정서와는 달리,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마라’에서와 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의 노래는 이후 같은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남일해가 부른 「맨발로 뛰어라」 등으로 이어진다.

부드러우면서도 중저음이 탁성인 가수 최희준은, 손석우가 지은 「내 사랑 쥬리안」이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에서와 같은 밝고 깨끗한 이미지의 가창을 벗고, 재즈적인 어두운 분위기와 남성적 에너지를 표현하면서도 절제감 있는 가창을 보여주었다.

이후 「나는 곰이다」, 「폭풍의 사나이」 등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계속 부르게 되는데, 이 노래는 그의 세련되고 중후한 남성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노래의 시발점이 되었다. 영화와 노래에서 모두 히트한 「맨발의 청춘」은, 199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만들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한편 「맨발의 청춘」은 같은 해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와 함께 1960년대 초의 건전하고 명랑한 대중가요의 흐름을 깬 두 가지 흐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들이 나온 1964년은 박정희 정권의 군정기가 끝나고 민정이 이루어진 실질적인 첫 해였으며, 이 두 노래의 유행은 1960년대 초에 다소 과도하게 부푼 서양적 근대화에 대한 낙관과 건전하고 명랑한 계몽적 태도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다소 꺾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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