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국회 공전은 여야의 ‘미필적 고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슬로건과는 달리 갈수록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미국과 독일을 방문하는 동안 국내 정치는 꼬일 대로 꼬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꼬인 내치의 돌파구로 외국을 순방해서 성과를 올리는가 싶으면 꼭 사고가 발생해서 도루묵으로 만들곤 했던 것이 묘한 데자뷔로 떠오른다.

화근은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입에서 비롯됐다. 추 대표는 문준용씨 특혜 채용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해 6월 29일 “공당의 대선 공작 게이트”라고 포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7월 6일에는 “박지원 전 대표와 안철수 전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머리 자르기”로 에스컬레이트되고 마침내 7일 “형사법상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는 발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머리 자르기’ 발언은 국민의당이 협치를 포기하는 계기가 됐다. 가뜩이나 여야 사이에서 또 호남 민심의 향배를 두고 줄타기를 하던 국민의당으로선 새정치를 추구하는 자존심을 건드리고 나아가서는 당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안으로 인식한 것이다. 거기에다 추 대표는 판사 출신답게 ‘미필적 고의’라는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것이다.

미필적 고의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행위자가 결과 발생에 대한 확실한 예견은 없으나 그 가능성은 인정하는 것”이다. 검찰이 이유미씨로부터 제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이유미씨와 같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유다. 이 의미는 이 전 최고위원이 ‘제보가 허위 사실이라도 어쩔 수 없고 유포돼도 그만’이라는 속마음이 있었다는 뜻이다.

추 대표의 ‘예언’이 적중하자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추 대표가 사실상 검찰총장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 부대표는 “청와대와 여당이 더 이상 (국민의당과) 협치하겠다는 의사가 없다는 게 명백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국민의당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걸려 있던 ‘국정은 협치, 국민은 혁신’이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을 철거했다.

그럼에도 추 대표가 국민의당에 사과를 표명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야당을 자극한 추 대표의 메시지는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을 겨냥한 측면”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난감하다 못해 말을 잊은 상황이다. 원내대표실은 “추 대표 본인은 자신에게 격려 문자를 보낸 지지자들에게 감사 답신을 하는 등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넌지시 비판했다. 청와대도 “의원들은 헌법기관이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보니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고 있다. 지난 3일 완료된 제1기 내각 인선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곤 사회부총리까지는 문 대통령의 의지대로 임명을 강행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국민의당까지 국회 보이콧에 가세하면서 나머지 장관들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명된 장관 후보자들은 하루빨리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부처의 보고만 받고 있을 뿐이고, 물러나야 할 장관들은 분위기도 맞지 않는 국무회의에서 진땀만 흘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내각과는 결이 다른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이 실종된 상태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소장 부재로 재판연구관 인사 등 업무가 정지된 상태다. 국회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토로한다. 김 후보자 청문 특위 여당 간사인 진선미 의원은 “국회 전체가 마비됐으니 간사 간 논의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당 대 당으로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으며 국민의당은 추 대표를 성토하며 국회는 극한 대치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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