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독일이라는 쇼윈도우에 전시된 평화통일

 

독일 방문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대북정책 기조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7·6 베를린 구상’을 밝히면서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앞선 두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는 동시에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정부의 5대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추석 이산가족 상봉 등 당장 실천할 수 있는 4가지 제안도 내놓았다.

참으로 이상적이고 훌륭한 구상이다. 국내 한 언론은 이를 선이후난(先易後難)이란 표현으로 아전인수식 칭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구상이 너무나 훌륭하고 이상적이란 데 있다. 당장 현장에 있던 쾨르버 재단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화를 못 하는 상황 아닌가”, “북이 (추가) 군사적 도발을 하는 것 아니냐”,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ICBM 발사로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문 대통령의 말마따나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북한이 핵 도발을 전면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양자·다자대화에 나서는 일이 가능한지 먼저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내가 말한 것은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고 평소부터 해왔던 주장”이라며 ‘7·6 베를린 구상’이 공식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아니라는 투였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인식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수준을 보였다.

역대 대통령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은 하나 같이 ‘허상’에 그쳤고, 자신의 임기 안에 통일을 이루거나 최소한 통일 단계로 가는 디딤돌을 놓겠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이 견해는 ‘팩트’에 근거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70년여년 동안 북한의 대남 정책 기조는 변한 바 없다. 그 시발은 1948년 5월 14일 정오를 기해 남쪽에 전력 공급을 끊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날에도 가난 탓에 전기와 수도요금을 내지 못하는 가구에 단전단수를 하는 행위는 범죄로 취급된다. 북한의 전기에 의존하는 남쪽 동족의 생존권을 짓밟은 그들이 과연 한민족의 일원일 수 있는지 반론을 제시해보라.

그 다음은 6·25 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의 학살극을 벌인다. 우연찮게 끼어든 미국 등 참전 16개국은 2차 대전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을 겪고는 ‘반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전 세계 반전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후의 일은 말 안 해도 불문가지다.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랄 것 없이 당선되자마자 독일로 달려가 독일 통일을 칭송하며 그들의 노하우를 지혜 삼아 거창하게 평화통일을 선언하는 것이 관례였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동‧서독의 분단과 통일은 독일 민족 스스로의 자작극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남북한의 분단과 대립은 머리에서 나온 이념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권력을 쟁취하고 너보다 내가 더 잘 살아야겠다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말로만 가능한 허상이다. 통일의 ‘경우의 수’는 단 두 가지다.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가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스스로 무너지든지 빈곤과 핍박을 견디지 못한 민중이 혁명에 성공하는 길밖에 없다.

핵이니 미사일이니 하는 문제는 미국이 감당해야 할 사안이다. 우리는 북한의 지도부를 계속 압박하고, 도탄에 빠진 북한 동포를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한다. 나머지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민의 DNA를 가진 북한 동포의 몫이다. 그리고 시간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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