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녹취 조작’, 아직도 이런 일이…

 

대선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던 국민의당이 암초에 부딪쳤다. 5·9대선일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 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뒷받침하는 핵심 물증이라며 공개한 ‘파슨스 스쿨 동료’ 녹취가 조작으로 드러난 것이다.

대선 당시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장을 맡았던 이용주 의원은 27일 “당에서 조작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검찰의 수사 확대 조짐에다 안철수 전 대표의 책임론까지 제기되면서 파문은 예상 외의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검찰은 조작된 녹취록을 제공한 이유미 청년위 부위원장에게 조작을 지시한 당 인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국민의당이 이번 사건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조작을 사전에 기획한 인물이 누구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어떤 숨김과 보탬도 없이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강조했고, 김동철 원내대표는 “(조작 책임자를)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려달라”고 주문하면서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이번 사건을 이준서 전 최고위원, 이유미 청년위 부위원장 등 ‘사회 초년생들’이 벌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당 차원에서 연루된 인물은 없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국민의당은 진상조사단장에 율사 출신 김관영 의원을 임명하고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는 “준용씨 특혜 채용 의혹과 증거조작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처리하는 특검을 제안했다. 준용씨 특혜 채용 의혹으로 맞불을 놓으며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박지원 전 대표도 같은 입장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 등의 ‘특검론’은 곧바로 당내 반발을 불렀다. 김태일 당 혁신위원장은 혁신위 긴급회의 후 “특검 주장은 구태의연한 정치공방으로 ‘물타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김 위원장은 2003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천막당사, 2004년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영등포 창고당사를 예로 들며 “당의 대응이 안이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불은 안철수 전 대표의 책임론으로 옮겨 붙을 조짐이다. 이상돈 의원은 “김대업 조작 사건 수준의 심각한 문제”라며 “안 전 대표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안 전 대표는 여전히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사건을 주도한 이씨는 검찰에 출석하기 전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당이 기획해서 지시해놓고 꼬리 자르기 하려고 있다. 당에서는 몰랐다고 한다”고 불편한 심경을 털어놨다. 또 이씨는 모 위원장의 지시를 언급하며 “당이 당원을 케어(보호)하지 않는다”는 문자메시지를 또 다른 당 관계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은 이번 사건이 당의 존폐와 관련된 위기로 판단하고 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에 크게 밀리고, 국회에서는 여야 사이에서 ‘낀 정당’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신뢰 위기를 넘어 존립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김태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의 간판으로 활동해야 할 안 전 대표의 정치 복귀 일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현행 승자 독식 대통령제의 병폐가 또 한번 드러낸 셈이다. 무슨 수단을 쓰던 선거에서 승리만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사면권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역대 대선이 혼탁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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