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구우일모(九牛一毛)’와 ‘백년하청(百年河淸)’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대화 재개에 안달하고 있다. 속내는 아마도 연내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국제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다. 미국이 주도하기는 하지만 UN의 결의에 따른 강도 높은 대북 제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도 남북문제는 민족끼리 푼다는 데 이의를 달수는 없다. 북한 주민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인도적 지원부터 민간 교류 그리고 스포츠를 통한 점진적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방향 자체가 옳고 그 당사자가 남북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조건으로 현 상태에서의 핵·미사일 동결을 요구하면서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경우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축소와 첨단 전략무기 전개를 중지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의 조건을 ‘비핵화’라는 한마디로 잘라 규정했다.

북한의 입장도 한·미와는 다르다. 북한 김정은은 핵·미사일로 잔뜩 위협한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 받을 만큼 받아내는 전략적 태도를 고수할 것이다. 우리에게서 챙길 것은 다 챙기고 또 ‘마이 웨이’로 나갈 것은 자명하다. 김정은의 상대는 미국이지 문재인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6·15남북선언 17주년 기념식에서 ‘남북합의 법제화’까지 언급했다.

문제는 북한이 핵·미사일 동결을 할 확률이 ‘구우일모(九牛一毛)’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요구하는 비핵화를 수용할 확률은 단정적으로 0%다. 오죽하면 정부 고위당국자가 사석에서 “당신이 김정은이라면 핵·미사일의 고도화가 거의 완성된 마당에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하는 판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6·25전쟁 67주년 사설에서 “우리의 자위적 핵 억제력은 결코 그 어떤 협상물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잘라 말한다. 며칠 후 있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한국 정부를 압박해 유리한 정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선전공세인 셈이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걸고들 것이 아니라 미국의 북침 핵 선제공격 음모에 반기를 들고 쌍방 사이에 첨예한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오히려 반박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북한의 대남선전기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우리 정부를 향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9개 항목을 발표했다. 이것들은 우리 정부가 대부분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대전제가 ‘남북 대화에서 핵 협상 배제’이며, 그 외 ‘한미 군사훈련 중지’ 그리고 ‘집단탈출 여종업원 송환’ 등이다. 일단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꾀한 다음 미국을 배제시키고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내년 2월 열리는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비교적 접근이 쉬운 스포츠 교류부터 시작해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 10·4남북정상선언 10주년 행사 등으로 대화와 교류의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북한 노동신문은 앞서 언급한 사설에서 “조미(북-미) 간의 문제인 핵 문제를 북남 사이에 해결해보겠다는 것은 언제 가도 실현될 수 없는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못 박았다. 이럴 때 북한의 태도를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이런 판국에 새 정부의 외교안보를 맡은 이들은 고집스럽게 연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목을 매는 듯하다. 아무리 훌륭한 뜻과 명분이 있어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은 없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남북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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