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비극 6.25 전쟁의 발발은 아직도 위험 수위

[코리아데일리 강동우 기자]

6월25일 6.25전쟁이 다시 도마위에 올라 그 결과에 대해 논란이 분주하다.

6.25전쟁은 한반도가 1945년 8월15일 일본에서 해방된 후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어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고 이것이 고착화 되어 남북에 각자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촉발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김일성을 수장으로 하는 북한 공산군이 남한의 적화 공산화 무력통일을 위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평화롭던 한반도는 전쟁의 소동돌이에 봉착하게 된다.

▲ 6.25전쟁당시 피난길에 나선 어린 피난민들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2차 세계대전이후 벌어진 가장 규모가 컸던 전쟁이며 남한을 도우기 위해 유엔에서 전투병력으로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참전했으며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중공군이 개입을 하여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남한과 유엔군은 압록강 해산진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으나 1953년 7월 27일 결국 현재의 휴전선으로 휴전협정을 맺음으로서 전쟁을 휴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이라해서 6.25전쟁이라 부르며 이 전쟁의 결과로 1953년 7월 휴전협정때 정해진 군사분계선이 현재의 휴전선이다.

전쟁의 원인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이 사회이념을 가지고 싸운 전쟁이다.

북한은 소련의 사회공산주의를 선택하였고 남한은 미국의 민주자본주의를 선택하였기에 일어난 전쟁으로 6.25는 우리의 전쟁이지만 사실상 미소냉전에 의한 세계의 새로운 구도에 끼어들어 어떻게 보면 미소의 대리전쟁을 하게 된거나 마찬가지 이다.

2차대전으로 남북한을 분할점령한 미국은 공산주의가 퍼지지 않게 하려고 남한을 원조했고, 소련은 공산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북한을 지원한 결과로 북한 김일성의 남침야욕과 합쳐 일어난 전쟁으로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다.

전쟁 과정

1950.6.25 북한군의 남침

1950.6.26 유엔안보리, 북한군 침공중지 결의

1950.8.1 미 제 8군사령관,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명령

1950.8.5 인민군의 8월 공세 시작

1950.8.16 B-29 폭격기, 융단폭격

1950.8.31 ~ 9.8 인민군의 9월 공세

1950.9.15 인천상륙작전

1950.9.28 수도 서울 탄환

1950.10.1 국군, 38도선 돌파 북진

1950.10.25 중공군, 제1차 공세 개시

1950.10.26 국군, 압록강 초산 도달

1950.11.21 미 제10군단, 두만강 혜산진 진입

1951.3.15 국군, 서울 재탈환 및 북진

1951.4.12 맥아더원수 해임, 리지웨이 장군 유엔군사령관 임명

1951.6.23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1951.7.10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시

1951.10.25 휴전회담장 판문점으로 이동

1951.10.28 군사분계선 설정 합의

1951.12.18 쌍방 포로명단 교환

1953.4.20-26 부상병 포로 교환

1953.6.8 포로 송환문제 타결

1953.6.18 이승만 대통령, 전격적 반공포로 석방

1953.7.27 휴전협정 조인

전쟁 결과와 이후 경과

전쟁은 3년 1개월간 계속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남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약100만 명을 포함한 약 200만 명이며, 공산진영의 인명피해는 100만 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기간중 한국은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전쟁이후 현재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휴전선은 고착화 되었고 남북간은 대립과 완화를 반복하는 긴장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까지의 경제성장과 일정수준의 민주화에도 성공했으나 북한은 세계 최극빈국 수준의 경제수준과 시간이 갈수록 전체주의가 심각해져 이제는 왕조국가의 면모까지 보이고 있는 점이 큰 문제로서 체제의 이질화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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