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수필 내용에 반공법 폐지 주장 없다”

한 변호사 “법원, 압제자에 휘둘려서는 안 돼”

[코리아데일리 이창석 기자]

▲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수감생활을 했던 한승헌(83) 변호사가 4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코리아데일리 DB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수감생활을 했던 한승헌(83) 변호사가 4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헌숙)는 22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변호사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한 변호사는 1972년 한 잡지에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처형된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는 글을 발표하고, 이를 1974년 자신의 저서 ‘위장시대의 증언’에 수록한 혐의로 이듬해 구속 기소됐다.

한 변호사는 실재하는 특정인을 지칭한 내용이 아니고 사형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수필체로 쓴 글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9개월간 수감 생활을 한 한 변호사는 2심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면서 풀려났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고, 변호사 자격이 박탈됐다.

2013년 서울고법이 김 의원은 간첩이 아니라고 판결하자 한 변호사는 재심을 요청해 이 사건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수필 내용 전체를 살펴봐도 사형집행을 당하는 자를 애도하고 있을 뿐 반공법 폐지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 반성을 수필 형식으로 적은 것이라는 한 변호사 주장이 수긍이 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수필을 작성하는 것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유죄를 확정했던 대법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이 끝난 후 한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42년 만의 무죄 판결에 기쁨보다 착잡함이 앞선다”며 “독재권력의 탄압수단으로 사법절차와 형벌이 악용돼서는 안 되며, 압제자의 농락에 법원이 무력하게 휩쓸리는 치욕은 절대로 되풀이돼서는 안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시국사건 변론을 다수 맡아 진행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감사원장을 지냈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변론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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