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조슈아 라모의 ‘제7의 감각’

 

최근 프랑스 대선과 총선 승리를 이끈 에마뉘엘 마크롱 (Emmanuel Macron), 조금 멀리는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생 등 민주주의 본산인 나라들에서 나타난 놀라운 선거 결과.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테러,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마저 예측에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세계 경제, 넘쳐나는 난민과 그들의 입국을 거절하는 선진국 그리고 그들의 떼죽음.

한편으론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마윈(알리바바) 등 순식간에 부를 거머쥔 인물들. 한국과 중국의 바둑 최고수를 무참히 깨버린 알파고, 암 치료에서 획기적인 진보를 보인 인공지능 의사 ‘왓슨’의 등장.

이 모두가 소셜미디어의 확산, 사물인터넷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혁신적 기술의 산물이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네트워크를 통한 ‘초연결사회’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조슈아 쿠퍼 라모는 ‘제7의 감각—네트워크 시대의 권력, 부, 생존’이라는 저서에서 연결(네트워크)이 권력인 시대의 새로운 생존 본능으로 ‘제7의 감각’을 창안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행기 사고 또한 발명하는 것”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의 논리처럼 “네트워크는 스스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것도 많은 문제를”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그는 이 점을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현자(賢者) 난화이진(南懷瑾)의 입을 빌려 서두에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19세기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은 폐렴이고, 20세기에는 암이었다. 21세기 초 우리 시대에 나타날 병은 ‘광기(狂氣)’일 것이다.” 이 광기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정치·군사·경제·교육·문화·의학 등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미 벌어진, 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실 지난 가을부터 올 봄까지 매주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촛불에 대항한 태극기 집회도 마찬가지다. 과거 일련의 민주화 요구 시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진정 세상이 바뀌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인사 난맥에 정치권의 무분별한 투쟁, 게다가 새 정부 탄생에 기여한 공로를 챙기려는 각종 이익단체의 압력 등 과거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새 정부는 정부대로 무조건적인 일자리 창출—안 되면 공무원이라도 증원하는 방식—에 목을 걸고, 백년 주기의 대가뭄에도 댐을 여는가 하면, 앞으로의 수요 공급도 따지지 않고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탈 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며 스스로 마스터베이션을 즐기고 있다.

사회 지도자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위험에 빠진다. 더욱이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반드시 몰락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현재 상황과 싸우려는 정신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도 준비되기는 힘들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만드는 언어, 관습 등 새로운 문법을 학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네트워크의 힘을 경이롭게 여기는 초연결시대의 코호트(cohort,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의 향방이 미래를 결정짓는다. 잘 되면 초연결 에너지를 얻을 것이고, 비틀어지면 시대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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