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비핵화’ vs ‘핵·미사일 도발 중단’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첫 단추인 인사 문제부터 지루하게 꼬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밝힌 것처럼 인사권자는 대통령 자신이고 국민 여론이 지지하는 만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대통령과 철학이 같은 내각을 꾸리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국민이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좀 궁색하다.

문 대통령은 15일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과 기존의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해 나갈지 협의할 의사가 있다”며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그리고 북-미관계의 정상화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요한 점은 역대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비핵화’가 아니라 ‘핵·미사일 도발 중단’으로 후퇴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역대 정권에서 추진한 남북 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반드시 존중돼야 하는 중요한 자산”이라며 “국회 비준을 거쳐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 등 역대 정부의 남북 합의를 포괄하는 ‘남북기본협정’을 법제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과 주변 4강(미·중·일·러)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을 바라보는 현재의 국제 정세는 과거와는 무척 다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단거리 미사일로 위협하던 김정일 시대와는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북핵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과 주변 4강에 국한된 문제였고, 국제사회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던 때였다.

하지만 김정은이 안정적인 집권에 성공하고 핵·미사일 도발이 국제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먼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1의 적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대비에 나섰다. 미국은 전통적인 동부 지역 방어를 넘어 북한의 공격이 가능한 서부 지역에 대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이럴진대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일본의 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의 혈맹을 자처하며 사사건건 북한의 손을 들어주던 중국도 자국의 코앞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북한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UN의 대북 제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는커녕 북한을 지원하던 유류 등 물자 공급을 제한하고, 유사시에 대비해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는 등 북한의 불장난을 경계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 중국에 실망한 김정은이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를 설득하면서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주도적으로 닦았다”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 문제 해결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사드 배치 연기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보수적인 미국 공화당 정부로부터 의심의 눈길을 받는 문 대통령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방북을 통해 남북 합의를 이끌어냈음을 강조하며 임기 중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에둘러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문제는 우리 국민에게도 매우 민감한 문제다. 국제사회의 결의를 따라 제제를 가하자니 북한 주민이 고통받고, 대화와 협력으로 대하면 항상 엉뚱한 도발을 저지르고, 최근에는 우리의 인도적 지원마저 거부하고 있다. 여론을 중시하는 새 정부가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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