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열 열사 운동화 (복원후)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코리아데일리 박승훈 기자]

머리 근처에서 터진 최루탄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한열의 27㎝ 흰색 타이거 운동화는 그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을까.

"운동화가 있어야 집에 갈 텐데 싶어서 L의 어머니가 올 때까지 운동화를 꼭 들고 응급실 한쪽에 서 있던 마음. 그 마음이 지난 28년 동안 L의 운동화를 버티게 해 준 게 아닌가 싶어서."(소설 'L의 운동화' 271쪽) 

당시 학생들은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을 부축했고 급히 병원 응급실로 그를 옮겼다. 신발을 전해주기 위해 밤늦게까지 병실 앞을 지켰고 그의 회복을 빌었으며 그의 시신이 경찰에 탈취되지 않도록 며칠동안 병원을 겹겹이 에워싸고 지켰다.

이한열은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6ㆍ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 때문에 한 달간 사경을 헤매다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죽음은 바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국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150만 추모 인파가 모였다. 

이한열을 병원으로 옮기는 긴박한 순간 떨어진 '타이거' 운동화를 주워 챙겨준 연세대 84학번 이정희(51)씨는 "'한열이가 깨어나면 신발을 신고 집에 돌아가야 할 텐데' 하는 마음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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