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검토없이 쏟아지는 ‘공약 이행’

 

교육부가 25일 국정기획위 보고를 통해 내년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세∼5세 무상보육) 예산 전액을 국고로 부담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한발 더 나가 누리과정 지원 단가를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계획도 보고에 포함했다. 현재 지원 단가인 1인당 월 25만원을 단계별로 인상한다는 것이다. 누리과정이란 만 3세~5세까지 모든 유아의 유치원 교육과정과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을 통합해 소득에 관계없이 유아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공통의 교육·보육과정이다.

수년간 되풀이됐던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갈등은 일단 해소될 전망이다. 문제는 예산 확보다. 누리과정 예산은 4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기재부가 지난 24일 국정기획자문위 상대 업무 보고에서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실제 예산이 어떻게 편성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국정기획위는 이와 함께 국공립 유치원 원아 수용률을 현 25%에서 40%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사립 유치원을 공공형으로 전환해 1330학급을 늘리고 국공립 유치원 2431개 학급을 늘리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누리과정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 교육 출발선의 평등을 기하고 걱정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저출산 문제 해결에 다소나마 기여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자찬했다.

국방예산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과 정예강군 육성의 필수조건으로 국방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꼽으며 예산 증액을 약속했다. 당장 사병 월급 인상에서 대규모 예산이 소요된다. 군 당국은 대통령 공약대로 내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의 30% 수준까지 병사 월급을 올리려면 연 7000억∼8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노인 기초연금 인상,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조 단위의 재정 사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기초연금 인상의 경우 연 4조4000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대 연 8조2000억 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는 주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언급하면서 “담뱃세보다 훨씬 효과가 높을 것”이라며 중앙정부 재원을 지방으로 돌릴 계획을 암시했다.

농업 관련 예산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농축산식품부의 업무보고에서 이개호 경제2분과위원장은 “쌀값이 가마당 12만 원까지 추락해 가격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쌀 과잉 공급이 우려되는데 올해 2조3000억 원인 쌀 직불금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모두가 시간을 다투는 일로서 이르면 6월 발표될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이나, 늦어도 9월에 편성되는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될 것이 유력하다.

문제는 새 정부가 대규모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고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 곳간 열쇠를 쥔 재정당국은 ‘대통령 공약 이행’이라는 명분에 눌려 타당성 검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내부적으로 공약 우선순위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재정적자가 심해져 나라살림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크다.

새 정부가 준비된 정부의 면모를 보이려면, 공약 실천 계획을 발표하기에 앞서 재정건전성 문제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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