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데일리 칼럼] ‘일자리 상황판’의 허실

 

1호, 2호 ....... 등 번호가 붙은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발표 스타일이 화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0일 최우선 공약이었던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발표 때 ‘대통령 업무지시 1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제2호는 ‘국정교과서 폐지와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이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과 ‘세월호 희생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이 각각 3호와 4호 번호를 달고 탄생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업무 지시를 내리는 데 있어 특별히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국정 현안에 대해선 국민들 눈에 쏙쏙 들어오게 전달하려는 의미”로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업무 지시 형태로 주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두고 야당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흉내낸 듯하다”며 “협치 의사를 보이지 않고 일방적 독주를 보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 업무지시로 번호를 붙여 나가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포퓰리즘으로 비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며 “차관인사까지 되고 부처 지휘체계가 정비되면 업무 지시 방식 자체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1호 지시에 따라 24일 드디어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다. 문 대통령은 “재벌 그룹의 개별 기업별로 일자리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상황판을 통해 주요 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을 직접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언론에 공개된 일자리 상황판에는 실업률과 취업자 수 등 18개 일자리 지표와 함께 ‘정책성과’가 표시된다. 실적을 나타내는 정책성과 지표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년고용 ◇창업의 4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완성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5대 그룹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기업 대표가 각 부서에 영업실적을 쪼는 것처럼 원색적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역대 정부의 관행처럼 실적 위주로 운영되면 결국 양질의 일자리보다는 쉽게 늘릴 수 있는 가벼운 일자리를 눈가림식으로 확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숫자놀음이 우선하는 정책으로 변질되고 따라서 ‘좋은 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한 실적 경쟁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얘기다.

또한 산업 특성에 따라 일자리를 만드는 여력이 다른데도 이번 지표에는 같은 기준을 사용해 평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통기업이 대형마트 매장을 하나 내면 당장 수백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생기지만, 플랜트 중심인 석유화학 기업은 공장을 증설하더라도 인력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접근법도 문제다.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기업의 팔목 비틀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되 직무에 따라 고용형태는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선 비정규직의 개념부터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만들겠다는 81만개 공공부문 일자리 중 공무원을 제외한 일반 일자리는 60여만 개다. 공약으로 제시한 재원을 나눠보면 1인당 월 100만∼130만원에 불과하며, 이는 무기계약직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정규직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실망한 국민들로부터 더 큰 비난을 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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