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행위’ 길거리 흡연, 흡연자들의 권리는?

‘국민 건강 위해’ 담배값 인상, 실제 이익은 누구에게?

‘길거리 흡연’... 정부탓? 개인탓? 누구탓?

황사도 미세먼지도 구름도 한 점 없이 맑게 갠 어느 아침,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가 얼마 안돼 담배냄새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인상만 찌푸려지면 다행이다. 속으로 정말 온갖 욕을 다하게 되는 경우 중에 하나가 길거리 흡연자들을 마주쳤을 때이다. 덕분에 의사들은 오래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지만 요즘은 밖에서 오래 걸었다가는 수명이 오히려 줄어들 지경이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흡연자들마저 남의 담배연기는 기분이 나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로 '임상지질학저널'(Journal of Clinical Lipidology) 최근호에 발표된 김병진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2011∼2013년 사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11만 7천여 명 중 비흡연자라고 답한 사람의 1.7%(1천199명)가 *코티닌 수치가 흡연자에 육박하는 ‘비관측 흡연자’로 분류됐다. 김병진 교수는 "담배를 직접 피우지 않았더라도 간접흡연에 오랫동안 노출됐다면 코티닌 농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코티닌: 담배를 피우거나 간접흡연에 노출됐을 때 소변으로 배출되는 니코틴의 대사물질)

 

#1.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고 그 누구도 당당히 할 수 없지만 ‘합법적 행위’인 길거리 흡연, 무엇이 문제인 걸까.

흡연은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면 "흡연권은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와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7조에 의해 뒷받침된다"며 ‘흡연권’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는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그건 흡연자에게도 비흡연자에게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지만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 아니라 생명권에까지 연결되므로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판결해 혐연권의 우위를 명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판례가 흡연권을 마구잡이로 제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비흡연자들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 금연구역 법적지정, 나머지는 전부 흡연구역인가.

서울시에서는 2012년 학교, 청소년 시설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이후, 버스정류장, 어린이집, 유치원, 공원, 음식점, 카페, pc방,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 단계적으로 금연구역을 확대해 나갔다. 지난해 5월에는 지하철역 출입구로부터 반경 10m 이내 전 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렇게 금연구역이 늘어가는 와중에도 흡연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법은 아직 없다. 국민 건강 증진법 개정안 제9조는 흡연 구역 지정을 각 건물 소유주의 결정에 맡기고 있다. 건물 소유주의 재량에 따라 만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금연구역은 늘어가는 반면 흡연자들이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는 장소는 줄어가는 게 현실이다.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 대표운영자는 "흡연구역을 보장하지 않고 금연구역만 확대하는 것은 담배는 팔되 피울 장소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모순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으며, 정부가 법적으로 금연구역은 명시하면서 흡연구역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금연구역 이외의 ‘모든 구역을 흡연구역으로 만든 꼴’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왜 금연구역은 의무 지정이고, 흡연구역은 재량 지정인 것인가. 이는 명백히 흡연자들에 대한 역차별이자 혐연자들에 대한 기만이라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길거리 흡연은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이다. 일명 ‘길빵(길거리 흡연)’으로 인해 시비가 붙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얼마 전에는 담배로 붙은 시비로 횡단보도에서 아기엄마가 폭행을 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담뱃불에 데이기까지 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4살 여아가 길을 걷다 모르는 남성의 담뱃불에 눈을 데여 실명할 뻔했는데, 이는 성인이 팔을 편 높이가 어린이의 눈높이와 비슷해 발생한 사건이었다. 2001년 일본에서는 실제로 도쿄 지요다구의 한 거리에서 행인이 피우던 담배 불똥이 뒤따르던 아이의 눈에 들어가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흡연구역을 따로 지정해 그 곳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3. ‘국민 건강 위한’ 담배가격 인상, 실제로 ‘누구를 위한’ 인상인가.

정부는 2015년 1월 1일부터 기존에 2500원이던 담배가격을 4500원으로 인상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담배 수요를 줄일 목적으로 담배가격을 인상한다는 명목을 내걸었다. 하지만 담배가격만 올랐을 뿐 담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낮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바로 옆나라 일본의 실제 사례가 있음에도 국민의 건강이 소중하다던 한국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생각인지, 2020년이 다 되어가도록 흡연구역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

길거리 흡연 문제에서 무엇보다 가장 문제로 지적된 것 역시 합법적인 흡연 구역을 지정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에는 서울시에서 지하철역 입구에 흡연부스를 설치하는 조례 개정을 앞두고 공방이 벌어졌지만 결국 시의회 측은 금연구역 지정을 시행한 후 실태조사를 거쳐 재논의 한다며 흡연부스 설치 조례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 사진=sbs뉴스

흡연구역 지정 미흡 뿐만아니라 흡연부스 관리도 문제이다. 흡연자들은 흡연부스가 있는 곳에서도 안에서 피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흡연부스의 실내관리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흡연부스의 환기구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작동이 될지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사실 흡연부스는 환기가 중요한데 환기구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면 흡연자들이 이용하기에도 고역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기껏 설치한 흡연부스는 무용지물이 된다. 정부는 ‘국민 건강 지킴’ 명목으로 대가를 지불받은 만큼 의무를 확실히 이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4. 배려하고, 배려받는 사회에서 살고싶지 않으신가요.

근본적인 문제점은 흡연구역 부족에 있지만 ‘공중도덕’이 부족한 면도 길거리 흡연을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모든 걸 법으로 규제할 수 없을뿐더러 모든 걸 법으로 규정해야만 지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내게 불이익을 줘야만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건 너무 삭막한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흡연자들 역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공공장소나 어린아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흡연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5. ‘유비무환’. 정부도 흡연자들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

나라를 세우고 세금을 내는 이유는 사유화할 수 없는 이익이나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보호하며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이유에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흡연구역을 늘리고 그 이외의 장소에서 흡연을 할 경우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해 흡연자들과 혐연자들의 권리가 공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흡연자들 역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정부의 흡연구역 확대만을 바라면서 눈치보며 담배를 피우기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금연정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요즘 보건소 등지에서는 금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며칠 이상 금연 성공시 현금으로 사례를 주는 곳들도 많이 있다. 흡연자들 역시 담배가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해주는 일시적인 효과 이외에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흡연자들은 대부분 ‘암에 걸려도 상관없어’ 혹은 ‘나는 괜찮을거야’라는 생각으로 담배를 피울 것이다. 애연가였으며 폐암으로 사망한 개그맨 故이주일 씨는 폐암 투병중 이렇게 말했다. “담배로 인한 피해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라고.

▲ 사진=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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