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격기도당, 긴급윤리위 열어 제명 결정…경찰 고소 움직임 파문확산

[코리아데일리 강도현 기자]

17일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였던 김용민 씨가 집권여당인 자유한국당(새누라당 후신)에 입당했다가 반나절 만에 제명 처리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심용민 씨의 입당과 제명은 그동안 그가 걸어온 길 자체가 집권여당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행보였기에 파뭉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이에 한국당 한 관계자는 코리아데일리 전화에서 “17일 밤 "오후 8시 경기도당 윤리위 회의를 열어 김용민 당원에 대한 제명 처분을 의결했다"면서 ”김 씨에 대한 징계 결정 사유로 ▲당원 품위유지의무 위반 ▲당에 대한 명예훼손 ▲국민 선동을 통한 민심 이탈 유발 ▲개인 명예훼손 ▲위계에 의한 업무 방해 등이다“고 말했다.

▲ 문제의 김용민 트위터 (사진출처 인터넷 커뮤니터)

그가 한국당에서 입당과 제명이 이뤄진 것은 그가 걸온 길에서 잘 나탄 있다. 이에 그의 이력을 보면 1974년 생인 김용민은 그동안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을 통해 시사 평론 활동을 하였고 학계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였으며 방송사 프로듀서로도 활동한 인물이다.

국내 팟캐스트 시장을 개척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팟캐스트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였고 인기도 얻었던 그는 방송 제작과 진행 모두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2015년에는 하루 8시간 편성의 '지식라디오'를 론칭하였다. 성대모사 재능이 있어 시사 방송을 진행할 때는 해당 인물들을 본인이 직접 흉내를 내기도 하여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용민 씨의 어린 시절을 보면 1974년 7월 2일에 강원도 춘천에서 가곡교회를 담임하던 장로교 목사 김태복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이듬해 11월 아버지가 서울 마장동 홍익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서울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김용민의 동생 김용범은 Mnet PD로 재직 중이다.

훗 날 김용민은 대학생 시절 자신을 보수성향 청년이었다고 회고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가 낙선하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청소년 시절을 라디오 매니아로 지낸 김용민은 강남대학교 1학년 때부터 극동방송에서 리포터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코리아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김용민은 성수대교 관련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당시 마침 김용민은 현장 근처에 있었고, 공중전화를 잡고 극동방송에 생중계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1년 전 1998년 8월, 25세에 PD로 입사하였다. 당시 자비로 조선일보를 구독할 정도로 보수 성향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정치적 생각이 변했다”고 보수에서 진보로 바뀐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김용민은 극동방송 입사 후 극동방송이 회장 김장환 목사의 개인 소유인 것처럼 운영되는 것에 반발하여,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교회 부조리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2000년에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의 아들 조희준이 스포츠투데이를 설립하자 김용민은 홈페이지를 통해 교회 성금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순복음교회는 극동방송에 공문을 보내 김씨에 대한 조처를 촉구했고, 극동방송은 김용민에게 개인 홈페이지를 없애라고 요구했다. 김용민은 이를 거부하고 사건의 전말을 홈페이지에 상세히 올린 뒤 예비군 훈련을 떠났다. 이후 김장환 목사는 김용민에게 '종교개혁을 하려면 마르틴 루터처럼 해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김용민은 이에 극동방송에 사표를 제출했다.

극동방송을 떠난 이후인 2001년 2월에는 기독교TV 상임고문의 권유로 기독교TV에 입사했다. 하지만 사장이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에 직원들이 반대했고, 김용민은 회사의 비리를 폭로했다. 2002년 11월 직원의 절반 이상이 명예퇴직을 하면서 기독교TV를 그만두게 됐다. 이 무렵 부인인 정현주씨와 결혼했다.

2003년에는 라디오21에 입사해 제작3팀장으로 활동했다.[5] 라디오21 '스타바이러스'의 출연진이었던 변희재는 자신의 담당 PD였던 김용민을 "성실하고 예의바른 청년"으로 기억했다. 라디오21 시절 김용민은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구라, 황봉알과 함께한 '날방개그'다. 이 프로그램에서의 발언이 훗날 김용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김용민은 2005년까지 라디오21에서 일했다.

2005년 12월 25일에는 뉴스앤조이 신임 편집장이 됐다.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에 의하면 김용민은 편집장이 되기 이전부터 간간히 뉴스앤조이에 글을 기고해온 사이였다.

김용민은 2007년경부터 전업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BS 시사자키 등의 방송을 진행하면서 기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였고, 2007년에는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용되었다.

한때 KBS에서만 4개 프로그램을 담당했지만, 2008년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과 이병순 KBS 사장 취임과 맞물려 KBS의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2009년까지는 CBS 시사자키의 주말 방송에 출연했으나, 그 해 가을 개편에서 하차했다. 당시 김용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과 관련 시사자키 오프닝 멘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멘트를 했다.

김용민은 인터뷰에서 시사자키 하차에 대해 "오래 하고 싶었는데 유감이다", "논쟁적 사안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교체를 결정한 것인가, 권력에 눈치가 보여 해임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한편, 2009년 7월부터는 한겨레의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해 시사되지, 시사장악퀴즈 등의 코너를 맡았다. 이를 계기로 사회자 김어준, 출연자 정봉주와 친분을 맺었다. 한편 2010년부터는 참여연대의 편집위원 자격으로 활동했으며, 여러 언론매체에 기고글을 보냈다.

2011년부터 나는 꼼수다의 PD를 맡게 되었다. 간간이 정치인과 유명인의 성대모사를 보여주고, 기독교계의 부패를 지적하며 명성을 얻었다. 정봉주가 수감된 이후 정봉주의 강력한 요구로 제19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서울 노원구 갑에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이노근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낙선 이후 나는 꼼수다 PD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대안적인 교회 건설 프로젝트인 '벙커1교회'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설교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3년 2월에는 서울 노원구 갑 지역위원장 사퇴함과 동시에 민주통합당에서 탈당하였다.

2013년 국민TV 창립 멤버로 참가했으나 2015년 퇴사했다. 퇴사한 이후엔 '일곱시간행불그네'를 설립해 조간브리핑 등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다. 2016학년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에 합격하였다. 2017년 국민TV에 복귀한 파란만장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그가 17일부터 정치권에 문제로 등장을 한 것은 한국다으이 한 관계자가 밝힌 "입당 후 본인의 SNS에 당을 조롱하는 글을 게시하고, 당이 정한 공식 약칭 대신 '자유당'으로 비아냥거렸으며, 당을 조롱하는 게시물을 본인의 SNS에 올려 국민을 선동함으로써 당을 호도하고 민심을 이탈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코리아데일리 전화에서 또 "특정인을 동지로 호칭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게시물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며, '기획입당'을 위해 입당원서를 팩스로 제출함으로써 위계로 도당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유한국당], 김용민님의 입당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라고 적힌 문자메시지 캡처 화면을 공개해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한국당은 “김씨가 2012년 4·11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전력이 있고, 여권을 향해 수위가 높은 비난 발언을 수차례 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입당은 한국당을 조롱하려는 의도로 풀이하고 그를 제명처리하는 등의 조치를 펼쳤다.

한국당은 또 김 씨의 입당과 이 사실을 전하는 페이스북 게시물이 당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보고 법적 조치까지 고려 중이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조롱할 목적으로 입당원서를 내 당 사무처 업무를 방해하고 당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고발 등의 법적 대응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김용민 파문은 정치권에서 논란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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