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조양호 회장의 말

[코리아데일리 박승훈 기자]

한진해운 40년 역사가 끝났다. 조양호 회장은 "피해를 본 선언들은 물론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전했다.

17일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정관리에 가면 물류대란이 불가피하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채권단을 설득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진해운이 출혈 경쟁과 해운업을 모르는 경영진들로 인해 부실해졌다. 인수를 통해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실패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며 "피해를 본 선언들은 물론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전했다.

▲ 사진=코리아데일리 DB

'한진'(HANJIN)이라는 로고를 달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한진해운 선박은 이제 볼 수 없다.

한진해운은 창립 40년 만에 회사 간판을 내렸고, 수송 보국(輸送報國)을 이루겠다던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꿈도 꺾였다.

한진해운은 1977년 조중훈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설립했다. 이듬해인 1978년 중동 항로를 개척한 데 이어 1979년 북미서 안 항로, 1983년 북미 동안 항로 등을 연달아 개설하는 등 한국 컨테이너 해운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써다.

1986년에는 불황에 따른 적자 누적을 이기지 못하고 첫 경영 위기를 맞았으나 조중훈 회장이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정상화를 이뤄냈다.

1988년 대한상선(대한선주)을 합병해 국내 '1호 선사'가 된 한진해운은 1992년 국내 최초로 4천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인 '한진오사카호'를 띄웠다.

이후 미국 시애틀, 롱비치 등 주요 항만에 전용 터미널을 세워 사세를 키우고 1995년 거양해운, 1997년 독일 2위 선사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조중훈 회장이 2002년 11월 타계하자 셋째 아들인 조수호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고 해운업이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까지도 575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잇달아 인수하며 순항했다.

그러나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하고 이듬해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뒤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지속한 글로벌 해운업 불황 속에 운임이 호황기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호황기 때 비싸게 장기 계약한 용선료로 인한 누적 손실 때문에 회사 경영 상태는 계속 악화했다.

최 전 회장은 결국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회사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고 완전히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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