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다운 영화가 회제로 등장 꼭 봐야하는 이유

[코리아데일리 곽지영 기자]

김기영 영화감독은 “주성치 감독이 차기작으로 인어가 나오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예상 가능한 비주얼은 위 이미지 그대로였다. 주성치 영화에 팬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인어의 비주얼을 시각적으로 그렇듯하게 그려낼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기발하고 재미있게 그 이미지들을 망가뜨릴 것인가이다. 주성치는 그의 오랜 '지지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면서 “'인어가 나오는 이야기'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이종 간 사랑과 그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서의 비극'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천하의 주성치 아닌가. 사랑을 위해 지느러미를 버리고 인간의 다리를 택한 인어 공주가 결국 물거품이 된다는 안데르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는 주성치의 세계로 포섭되면서 무협 서사(의으리!), 코믹 잔혹극, 에코 영화, 그리고 (여전한) 몸 개그와 말장난을 버무린 화장실 유머 속에서 빛나는 아포리즘의 하이브리드 서사로 변이되는 것을 으낄 수 있다”고 말했다.

▲ 영화 미인어 스틸

이러한 김 감독의 말속에는 <서유기 - 월광보합>(1994) 시리즈 때부터 시작된 주성치적 변모의 징후들-유치함에 담긴 심오함, 유머와 페이소스의 교배, 난센스의 향연, 반복되는 자기 복제, 외연의 확장보다 내포의 심화, 이야기의 물성화-은 <희극지왕>(1999), <소림축구>(2001), <쿵푸 허슬>(2004)를 거치며 매끄럽고 유려하게 진화 중이는 툭별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의 카메라 앞에서 뒷골목 신화와 전설(이라 쓰고 야부리' 혹은 구라'라고 읽는다)의 '그러할 수도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세계'는 '그러함의 세계', '당연의 세계'로 변모한다.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의 물성화(物性化)는 C.G. 등의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도성>(1990)에서 슬로모션을 기계가 아니라 몸으로 재현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완성된다. 고리타분한 진지함 대신 (인어가 닭고기를 게걸스럽게 물어뜯는) '대놓고 뻔뻔함'을 통해 구사하는 1차원적 유머들(모레이타우[無厘頭] : nonsense talk)은 주성치의 장기이자 주성치 월드의 중요한 핵심이다. 그는 유아기 퇴행 유머 속에 팥 앙꼬 같은 진심을 넣는다. 그가 낄낄거리며 내놓는 웃음의 옹심이에는 소금기 어린 눈물이 녹아 있다.

한편 <미인어> (美人鱼 , Mermaid, 2016)》는 코미디이며 동시에 여섯 개의 진지한 사랑 이야기-인어 할머니 사태, 산산, 류헌, 약란 그리고 문어 오빠-이다. '타자(인간)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 트는' 경험을 한 인어 할머니는 극 중 유일하게 산산(임윤)과 류헌(덩차오)을 이해하는 인물이다.

오리지널 <인어 공주> 서사가 타자를 사랑하게 된 인어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반면, 주성치는 인어 산산의 갈등과 함께 신화의 세계를 허구로 믿고 사는, 오로지 손에 쥘 수 있는 돈만이 세계의 존재라고 믿고 있는 인간 류헌의 경이와 공포를 서사의 양 축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현실의 벽, 이성의 한계를 두 명의 경찰 시퀀스를 통해 희화화 함으로써 매트릭스의 세계가 결코 쉽게 이야기의 물성을 획득하고 현실 세계로 편입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인어 공주>의 오리지널 서사를 확장시킨다.

매트릭스와 현실이 뒤섞이는 <소림축구>나 <쿵푸 허슬>과 달리 <미인어>에서 주성치는 두 세계를 엄격히 구분하면서 영화를 끝맺는데, 타자가 동일자로 편입되면서 싹튼 사랑이라는 중심 주제가 환경 보호라는 서브 주제와 얽히면서 신화의 세계를 환경처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숨겨 놓는 이례적(?) 선택을 한다. 숨겨져있던 신화의 세계를 현실 세계로 끌어 내림으로써 비밀이 폭로되는 서사의 쾌감을 즐기던 전작들과 달리 <미인어>에는 비급(祕笈)을 감추고 그 비밀을 주요 인물과 관객들만 공유하는 데서 오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다.

한편으로 극중 인물들은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공포'(류헌, 약란, 문어 오빠)를 겪게 되는데, 자기와 동류라고 생각했던 인물들-류헌에게는 산산이, 약란에게는 류헌이, 문어 오빠에게도 산산이-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은 그들 각자의 사랑과 대비를 이루며 그들의 사랑을 더욱 입체감 있게 만들어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약란과 문어 오빠의 사랑 방식이었다. 류헌에 대한 약란의 사랑(그것도 분명 사랑이다!)이 이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데 반해, 문어 오빠의 사랑은 류헌과 산산의 사랑을 닮아 있다. 오히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보다 더 사랑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성치가 감독으로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자연이란 본성의 (주는 대로 돌려주는) 순수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만 '상대를 사랑하고 아껴주면 상대도 그 사랑을 되돌려 준다'는 상호호혜적 주제를 인어(자연)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에 겹쳐 보여줌으로써, <미인어>는 코믹 배우 주성치가 아니라 '작가 주성치'로 한 단계 나아가는 디딤돌 같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주성치의 영화는 그의 이야기는 점점 단순해진다. 그리고 조금씩 깊어진다. 명민한 화장실 유머 속에서 진심이 반짝 빛날 때, 그의 영화는 진흙 속 연꽃처럼 피어나 자못 심오해진다. 그래서 나는, 주성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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