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100회 출격 첫 조종사 김두만 장군

▲ 2015년 6월 23일, FA-50 국산 전투기에 탑승한 김두만 장군의 모습.사진=공군 제공

“제일 침착할 때가 출격이다. 조종복을 입고 조종석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무념무상이다. 오직 자기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살아있는 6·25전쟁 영웅 김두만 장군(91)이 F-51D 전투기 100회 출격을 달성하고 남긴 말이다.

25일 대한민국 공군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전쟁영웅 김두만 장군의 평전 ‘항공 징비록’ 출판기념회가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개최됐다.

김두만 장군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부터 역사를 함께 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우리 공군에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김 장군은 T-6 훈련기로 출격해 적진에 맨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북한군과 맞서 싸웠으며 미군으로부터 전투기를 인수 받은 이후 1950년 10월 2일, F-51D 전투기로 첫 출격한 이래 본격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김 장군은 1950년 10월 여의도기지 작전에 참가해 개전 초기 우리 군의 서울 탈환과 평양 입성에 기여한 것은 물론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1951년 10월 대한민국 공군 단독출격작전,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차단작전 등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월 11일,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세웠으며 전쟁 중 F-51D 전투기로 총 102회를 출격함으로써 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제10전투비행단장, 공군작전사령관 등을 역임하면서 계속되는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비하고자 우리 공군의 현대화 작업에 매진했고 제11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재임 당시에는 제5공수비행전대와 제36전술항공통제전대 창설을 통한 공군 발전은 물론, 학생군사훈련단 창설과 공군기술고등학교 설치를 통해 공군의 미래를 위한 인재 양성에 앞장섰다.

2015년 6월 23일 6‧25전쟁 65주년을 앞두고 89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전투기인 FA-50에 탑승해 그가 목숨 걸고 지켜낸 조국 하늘로 다시 한 번 비상하면서 후배 조종사들에게 앞으로도 대한민국 하늘을 책임져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14개월에 걸쳐 2주에 한 번씩 실시된 인터뷰는 한 번에 4시간~5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김 장군은 저자에게 6‧25전쟁을 비롯한 당시 상황과 선후배 공군인들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항공 징비록’ 탄생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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