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인 1594년 3월 명나라 칙사인 담종인이 왜군의 꾐에 빠져 조선군은 왜군과 싸우지 말라는 취지로 쓴 ‘금토패문’(禁討牌文)의 전체 내용이 확인됐다. 당시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군대는 평양성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하자 심유경(沈惟敬)을 보내 일본 측과 강화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순신 연구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조선 중기 문신 약포 정탁의 ‘임진기록’에서 정탁이 옮겨 적은 이순신의 장계(狀啓) 초본에 ‘금토패문’의 전체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내용은 노 소장이 이날 펴낸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판에 실렸다.

▲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는 2차 당항포해전이 끝난 이후인 1594년 3월 10일 작성됐다. 이순신은 이 장계에서 담종인이 전하는 황제의 성지(聖旨)를 구체적으로 보고한다.

장계가 전한 ‘금토패문’은 “일본의 각 장수가 모두 갑옷을 풀고 전쟁을 그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너희 조선도 전쟁의 어지러움을 벗고 태평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어찌 양국의 이익이 아니겠는가”고 말한다. 왜군의 계책에 속아 오히려 이순신을 압박한 명의 오판 근거가 드러나 있다.

이어 “너희의 각 병선은 속히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일본의 진영에 가까이 주둔하지 말도록 하라. 교란시키는 일을 만드는 것은 사단을 일으키는 것이다”고 명했다. 아울러 조선군이 왜군과 교전하면 처벌할 것이라는 경고도 패문에 담겨 있다.

이순신은 이 ‘금토패문’을 보고 병으로 10여일 넘게 앓아 누운 와중에도 크게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다. 이순신은 답장으로 쓴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에는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흉악하고 교활한 적들이…병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뜻이 과연 어디 있다 하겠습니까”고 반박했다.

명나라는 화전양론을 저울질한 끝에 강경론을 선택하고 조선과 함께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다.

노승석 소장이 이번에 발견한 내용은 그의 책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판에 담겼다.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난중일기 친필 초고본을 중심으로 그동안 나온 이본(원본과 기본적인 내용은 같으면서도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 책)의 내용을 비교해 만든 정본 최종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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