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모든 것 내려놓고 고독한 방으로 다시...

[코리아데일리 이수돈 기자]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맡긴 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청와대를 떠나 올 때의 심정으로 다시 청와대를 떠나는 비운을 맞이 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외로운 청와대를 지켜온 박근혜 대통령은 긴 침묵속에 29일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 우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된 담화는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 저 자신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립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를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나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큰 잘못이다”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라고 밝히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방안을 말씀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지혜를 모아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경위에 대해서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고 마무리했다.

이렇게 국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애정사에 대해서 국민들은 그의 삶의 발자취를 다시 회고 하고 있다.

네이버 인명록에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제18대 대통령. 5대~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朴正熙)의 딸이며, 제15~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한국의 첫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으로 적혀 있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1952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陸英修) 사이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1963년 아버지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성심여자중학교를 거쳐 1970년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1974년 공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해에 프랑스의 그르노블대학으로 유학하였다가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문세광 의 저격으로 사망하자 귀국하면 그으이 삶은 어두운 길로 빠져들었다.

이후 1979년까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행하였으며, 이 시기에 구국봉사단(후에 새마음봉사단으로 개칭)을 조직한 최태민(崔太敏)과 함께 국민정신 개조운동인 새마음운동을 전개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의 저격으로 서거한 뒤 청와대를 떠났다. 어머니 육영수가 1969년에 설립한 육영재단(育英財團) 이사장(1982~1990), 정수장학회(正修獎學會) 이사장(1994~2005) 등을 지냈다.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회창(李會昌)을 지원하는 유세를 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듬해 4월에 치러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15대 국회의원이 된 뒤 제18대 총선까지 달성군에서 4선을 하였고, 제19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되었다.

1998년 10월부터 한나라당 부총재로 일하다가 2002년 2월 탈당한 뒤 5월에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여 당대표로 취임하였으나, 제16대 대통령선거를 1개월 앞둔 2002년 11월에 한나라당과 합당하는 형식으로 복당하였다.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06년 6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이명박(李明博) 후보에게 패하였다.

2011년 10월에 홍준표 대표가 사퇴한 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2월 당 명칭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는 등 쇄신을 주도하며 그해 4월의 제19대 국회의원선거를 지휘하였다. 2012년 7월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8월에 치러진 당내 후보 경선에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12년 12월 10일 국회의원직도 사퇴하였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슬로건으로,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선거운동을 전개하여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1577만 3128표(득표율 51.55%)를 얻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7년 중국문화대학교 문학 명예박사를 비롯하여 2008년 카이스트 이학 명예박사와 부경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2010년 서강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 등을 받았다. 이밖에 국회 출입기자단이 선정하는 백봉신사상(2007·2008·2009·2010),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의 정치발전부문 최고대상(2007) 등을 받은 금세기의 역사를 긋어온 그녀는 최태민과의 잘 못도니 만남의 결과가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너울에 빠져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치욕스런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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