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非婚) 문화, 언제부터 시작됐나..‘스스로 되짚어봐야’

[코리아데일리 이영선기자] 최근 독신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비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사진=MBN

비혼(非婚)은 미혼(未婚)이라는 어휘가 '혼인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나 아직 하지 않은 것'의 의미를 일컫는 경향이 크다고 하여 '혼인 상태가 아님'이라는 보다 주체적인 의미로 여성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이다.

200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비혼 여성’들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가족 안의 어머니, 아내로 머무르고 싶지 않다. 가족 내에서의 성별 분업으로 인해 여성들은 일-돌봄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는다’등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결혼해야한다’는 전제를 무너뜨리고 결혼 제도 밖의 삶을 지지하고자 하는 여성운동도 시작되었다. 결혼과 육아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는 시각이 나타나고, 독신을 선호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전희경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은 "‘비혼 세대’의 등장 시기를 2000년 초반으로 본다.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들이 이 세대의 핵심을 차지한다"라고 분석했다. 197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은 1990년대 들어 '신세대'로 불리며 시대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커리어 우먼’ 담론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들은 학력 인플레이션, 해외여행, 어학연수 등의 세례를 받았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결혼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전희경은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선택한 비혼이, ‘딸 시간’의 연장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결혼 이전의 상태를 ‘임시 기간’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래서 불안정하게 만드는 프레임에 갇히기보다, 비혼으로 살아온 시간의 ‘물질성’을 부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비혼은 ‘어쩌다 비혼’과 ‘페미니스트 비혼’으로 분화했다. 페미니스트 비혼의 경우는 대학 내 여성학 수업이 보편화되고 페미니즘 담론이 대중성을 갖게 되면서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를 비판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비혼에 대해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스트 비혼자들은 결혼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비혼을 정치화했다.

서울시의 ‘서울 가구·가족의 모습’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결혼은 선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8.9%였지만 2014년에는 41%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들은 더 이상 ‘혼자’라는 점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과거에는 혼자라는 단어가 외로움과 직결됐지만 이제는 심리적인 편안함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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