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툭툭] 졸업 ‘새장 속의 청춘’ 잊혀진 추억

[코리아데일리 곽지영 기자]

영화 ‘졸업;은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찌보면 인생의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일수도있고, 무의식중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야만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겪어야만하는 선택의 순간, 우리 인생에서 통과의례처럼 경험하는 선택의 순간은 많은 고뇌와 방황을 낳는다.

그것이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하는 단순한 문제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고, 21살의 벤자민처럼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차원적인 문제에서부터 기인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이 어떤 것이든간에 그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사유와 사고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되도록이면 꼭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순간, 그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 영화 졸업 스틸

21살의 청춘, 벤자민에게 선택이 여지는 없었다. 모두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품행이 방정한 그에게 이것저것 조언과 충고를 늘어놓고, 부모님은 그에게 미래를 계획할 시간을 주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인형이 되어달라고 요구한다. 여태껏 그래왔듯 아무런 생각없이 부모님이 요구하는 역할모델에 부합하는 인간상이 되었더라면 벤자민의 방황과 고뇌는 처음부터 없던 일이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지루한 만남과, 형식적인 조언들에 지쳐가던 벤자민은 로빈슨 부인을 만나게 되고 노골적인 유혹을 받게 된다. 그것이 벤자민 인생에 있어 최초의 일탈이자, 타락이며 한편으로는 진실된 자신의 욕망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내면의 욕망을 인정하면 인간은 원초적인 존재가 된다. 그 원초성은 수치심이나 이성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벤자민은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로빈슨부인과의 관계에 빠져들게 되고, 거기에서 얻게되는 육체적안식과 정신적불안의 괴리에 계속해서 고민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일레인을 만나게되고 그녀의 청초함과 순진함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 벤자민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의 양심은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를 끝내고 일레인에게 가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벤자민은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그러나 주변의 반대와, 로빈슨부인과의 관계를 알게 된 로빈슨씨가 일레인을 넘볼 생각을 하지도 말라며 엄포를 놓게되고 험난한 장애 속에서도 벤자민은 일레인을 찾아 달린다. 그리고 교회에서 일레인을 소리쳐부르며 마침내 전설과도 같은 그 명장면, 일레인과 벤자민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서 달아나는 멋진 씬이 탄생한다. 그것은 벤자민이 처음으로 스스로 사고하고, 충분히 생각하여 내딛은 미래를 향한 첫 발자국인 것이다.

그러나 벤자민은 무모하다. 그에겐 약속된 미래도 없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저 일레인을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다. 버스 안에서 손을 꼭잡은 두 사람의 얼굴에 얼핏 스쳐지나가는 불안감은 그런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새장 안에 갇혀있던 청춘은 결국 새장 문을 열고 탈출했지만, 나는 법을 잊어버린 그 새들은 새장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도 아니고, 속박도 아닌 반쯤은 자유롭고 반쯤은 얽매인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벤자민은 웃는다. 언젠가는 나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그를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으로 일레인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스스로 이뤄냈다. 그런 그에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쯤은 충만한 용기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항한 것 처럼 말이다.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게 열려진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우아하고, 걱정없이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게 선택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많고 많은 것 중에서 단 한가지를 고르는 느긋하고 마음편한 그런 과정. 그것이 내가 생각한 선택의 의미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인생에서는 선택할 수 조차 없는 것이 많았고,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최악과 최저 중에서 더 나을 것 없는 무언가를 택해야만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살아가는 것이란 그런 것이었다. 더 달콤한 초콜릿을 고르는 것이 아닌, 독과 더 독한 독을 고르는 그런 일 말이다.

졸업은 그러한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더스틴호프만의 희극적인 연기도 볼만하고 로빈슨부인의 관능적이고 성숙된 연기도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벤자민이 얻어낸 성취이자 그의 선택이 수반하는 많은 댓가를 기꺼이 지겠노라하는 어른다운 책임감이다.

설령 내가 더 독한 독을 고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마시겠노라하는 용기와 책임감. 그것을 벤자민은 21년이나 걸려서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설령 내가 택한 것이 독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않고, 꺾이지 않을 "단호한 결의" 같은 것.

그것이 있다면 세상의 어떤 고난과 위기가 다가온다하더라도 다음에 찾아올 달콤한 선택에 대한 기대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포레스트 검프는 인생은 초콜릿상자와도 같다고 말했다. 지금 설령 아주 쓴 맛이 나는 초콜릿을 집었다하더라도 다음에 먹게 될 달콤함을 상상하며 이겨내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선택에 기로에서 늘 마음에 지녀야 할 신념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희망이며 의지일것이다.

The sound of silence가 흐르고,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와 땀에 젖은 남자가 교회를 박차고 달려나온다. 그렇게 드라마틱하고, 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고 당당한 현실을 위하여. 언젠간 나는 법을 깨달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방황하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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