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1592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코리아데일리 맹성은 기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 임진왜란이 KBS1 드라마 '임진왜란 1592'로 재조명되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기 전 조선은 붕당 정치로 인해 군사적 준비가 부족하였고, 방군수포제가 정착되지 않았으며, 지배 계층은 이이의 10만 양병설 주장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하였다.

반면 일본은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국내 문제를 조선 침공이라는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에 1592년 일본은 부산포를 공격하였고 선조는 평양으로 피난을 갔다. 공 · 사 노비들은 노비 문서를 보관하는 관청인 장예원을 불태우다가 경복궁까지 불태웠고 일본은 침입 20일만에 서울을, 60일 만에 평양을 점령하였다.

이에 전라 좌수영 수군 절도사 이순신은 옥포 해전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사천 전투에서는 거북선을 이용하여 처음 승리하였다.한산도 대첩으로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의병들은 익숙한 지형을 이용하여 게릴라 전술로 일본군에게 저항하였으며, 5만 명의 명 군대가 원군을 하여 전세는 역전되었다. 일본군은 후퇴를 거듭한 뒤 부산에 집결하여 전쟁은 7년간 소강 상태가 지속되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자 일본군은 철수하여 전쟁은 끝났다.

한편 임진왜란은 17세기 동아시아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정권 교체(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루어졌고, 중국에서는 명 · 청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일본에 이황의 성리학과 도자기 기술이 전해지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의정부의 기능은 약화되고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5위의 군제는 5군영으로 편성되었다.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합법적인 신분 상승 방법인 납속책과 공명첩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경복궁과 4대 사고 등 일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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