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희 회장 발인 11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 묘지

[코리아데일리 심민재 기자]

구태희 LS전선 명예회장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죽음을 애도하는 국민들이 많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구 전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렬이 7일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그의 죽음에 애도를 보내는 것은 정치인이면서 기업을 이얼켜 세운 학처럼 곱게산 그의 생애가 조명되기 때문이다.

▲ 생전의 구태희 전 회장 (사진출처=LG 홍보실)
그의 고귀한 생애를 조명해보면 구태회 전 회장은 1923년 6월 24일 경남 진주에서 출생해 2016년 5월 7일 별세할 때까지 재계인사와 정계의 인사들이 그의 생애를 학처럼 선비의 기상을 가지고 곱게산 것으로 평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의 동생인 그는 제1공화국에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6선 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지조가 곧은 선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정치인겸 경제계인사다,

고인(故人)은 진주중학교, 후쿠오카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재학 중 해방을 맞아, 경성대학에 편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진양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경상남도 진주시-진양군 지역구에서 제6대, 제7대, 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3년 동안 여당 몫의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진주시-진양군-삼천포시-사천군 지역구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친야 무소속 이상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이후 전두환이 실권을 잡은 이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부정축재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이후 정치규제를 당했고 1984년 정치규제에서 풀려났지만 정계로 복귀하지 않고 LS그룹 경영에 별세하기 전까지 온 생애를 바쳐왔다.

향년 93세로 5월7일 별세를 한 구 전 회장은 LG그룹 창업 1세대 6형제 중 넷째다.
정계를 떠난 이후 구 전 회장은 동생인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LG그룹에서 분리해 LS그룹을 창립했다.

▲ 구자철 예스코 회장(왼쪽부터), 구자홍 LS-Nikko동제련 회장, 구자열 LS회장이 7일 오후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3시30분 신사동 자택에서 향년 93세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후 럭키금성그룹 고문, LG그룹 창업고문 등을 지냈고 2002년부터 LS전선 명예회장으로 재임해왔다.

그의 생애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구인회 창업주를 따라 LG화학의 모태인 락희화학에 입사해 '안 깨지는 크림 통 뚜껑' 개발을 주도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한편 구 전 회장은 슬하에 장남 LS니꼬동제련 구자홍 회장, LS전선 구자엽 회장, LS니꼬동제련 구자명 전 회장 예스코 구자철 회장 등 4남2녀를 두고 있으며 아들 이름은 구자홍, 구자엽, 구자명, 구자철이다.

부인이 최무 씨는 지난 2012년 때 사망했고 그의 장지는 옆에 마련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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