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없는 자리서 친박 최고의 ‘강봉균 선대위원장’ 추인 또 다른 불씨 ‘모락모락’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17일 새누리당 최고위가 김무성 대표가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선대위원장으로 강봉균 전 의원을 사실상 내정하고 영입에 나서 새누리당 내가 또 한번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공천과 관련해 심기가 불편한 가운데 터져 나온 선대위원장은 김무성 대표측이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일이 아니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새누리당 친박 최고위원들이 추인하고 영입에 나선 강봉균 의원은 민주통합당 출신 3선 국회의원이다.

▲ 안철수 국민의 당 공동 대표와 이야기중인 강봉균 전 의원
1943년 8월 13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강 전 의원은 1961년에는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한 후, 1964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69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20년 넘게 경제기획원을 거쳐 1993년 노동부 차관이 되었다. 경제기획원 활동 도중에도 학업을 계속하여 1972년에서는 미국 윌리엄스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1989년에는 한양대학교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전략이 소득분배구조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1994년 후반부터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1995년 말에 이수성이 국무총리로 발탁되자 집까지 총리공관과 가까운 청운동으로 옮기며 이수성 전 국무총리를 보좌 하였고 1996년 8월 8일부터 정보통신부 장관이 되어 김영삼 정부가 끝나는 1998년 초까지 자리를 지키며 김영삼 정부에서 각종 요직을 겸임 하였다.

이 후 김대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호남 지역출신이라는 것이 부각되어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되었다. 얼마 후에는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999년 5월에는 재정경제부 장관이 되어 2000년 1월까지 활동하였다.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인 2000년 4월에는 16대 총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에 새정치국민회의의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의 고흥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이후 2001년 3월부터 2002년 6월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있다가, 2002년 7월 1일 군산시 국회의원 강현욱이 전북도지사 임기를 위해 퇴직함에 따라 보궐선거를 통해 제16대 국회의원이 되어 2004년까지 활동하였다.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등 민주당계 당적을 이어온 강봉균 전 의원은 18대 총선까지 3선 의원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중도통합민주당의 원내대표를 지냈다.

이 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시민통합당과의 합당 이후 민주통합당으로 재창당되었으며, 이에 따라 민주통합당으로 당적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현역 의원 물갈이론을 내세워 현역 의원에 대한 공천을 배제하려 했으며, 특히 호남 지역의 다선 의원은 '민주당 텃밭'임을 감안해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었다.

특히나 강봉균 의원은 보좌관비리와 본인 및 아들 병역 사건이 확산되면서 공천 경쟁에서 뒤 떨어지고, 얼마뒤 탈당한뒤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2013년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의 경제 자문을 맡으면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였고, 2014년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전라북도지사 예비후보에 등록하였지만 송하진 전 전주시장에게 후보경선에서 패하였다.

이러한 강봉균 전 의원에 대해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제가 강봉균 전 의원을 만났다”면서 “강봉균 전 의원을 만나뵙고 정식으로 우리당의 중앙 상임선대위원장을 요청드렸다”고 설명해 또 하나의 불씨를 잉태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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