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그는 누구? 한겹 안쪽의 생애

[코리아데일리] 1일 한중일 전상회담으로 인해 중국의 국무원 총리 리커창의 생애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앞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1일 국회를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를 만나 "한중일 정상회담이 이번을 계기로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길 바란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 접견실에서 리커창 총리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중 정상회담이 훌륭히 잘 끝난 것을 감사하고 축하한다"며 "오늘 오후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성공적인 회의가 되길 우리 국민을 대표해 말씀 드린다"고 덕담을 건넸다.

정 의장은 "19개 분야 장관 회의도 3국 간 그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3국 정상회담을 통해 각 분야 별로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리 총리는 "중한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가까운 이웃"이라며 "최근 몇 년 간 중한 관계가 힘차게, 전면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러 주목을 받는 리커창 총리는 1955년생. 안후이 딩위안인(定远人). 현재 중공중앙정치국상위(中共中央政治局常委), 국무원(国务院) 당조부서기(党组副书记)를 맡고 있다. 2007.10 중국공산당 제17차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中央政治局常务委员会) 위원으로 후진타오(胡锦涛), 우방궈(吴邦国), 원자바오(温家宝), 자칭린(贾庆林), 리창춘(李长春), 시진핑(习近平) 허궈창(贺国强), 저우잉캉(周永康) 등과 함께 가장 젊은 나이로 서열 7위의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며 후진타오를 있는 차세대 지도자의 하나로 부상하였고 2012년 현 국무원총리(国务院总理) 원자바오(温家宝)의 직책을 이어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고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커창은 문화혁명 기간(1966~76) 중 하방(下放) 지침에 따라 1974년 고교 졸업 후 고향 안후이 허비비(合肥)의 대묘(大廟) 농업공사에 배치되었고 3년 동안 농민들과 함께 살며 대묘(大廟) 당지부 서기에 당선됐던 그는 23세이던 1978년 3월 베이징으로 올라와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이징대학 재학기간 중 베이징대학 학생회주석(学生会主席)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2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수장이 되었고, 후진타오 주석의 등장 이래 그와 가깝게 일했으며 1999년에 43세의 나이로 중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허난성 성장이 되었다.

리커창(李克强)은 유창한 달변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고, 뒤떨어져 있던 내륙 지역을 투자 매력 지역으로 변모시키는 등 중국 중앙 지방의 경제 발전을 이끈 바 있으며 2004년 12월, 랴오닝성의 당 위원회 서기로 옮겨 빈민촌 개조 사업을 펼쳤으며, 동북 지역 내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는 중국의 핵심 중의 한명이다.

전, 2008. 2. 20., 도서출판 인포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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