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땀한말 눈물한짐’ 얽힌 미소속에 감춘 ‘홀로 사랑’

[코리아데일리] 29일 네티즌들 사이에는 신승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신승훈은 1966년 4월 11일 충청남도 대전시 신안동(현 대전광역시 동구 신안동)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전 동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대전동중학교(2003년 대전 우송중학교로 명칭 변경)에 입학했다. 중학생이 된 신승훈은 2학년이 되던 해에 당시 친구들과 Poets(시인들)이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학교 내에서 후원을 받으며 활동을 하려고 했으나 친구의 전학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 결국엔 흐지부지되었다.

▲ 신승훈, 김고은과 듀엣
하지만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져만 갔고 그러던 중 같은 해 겨울방학 때 스케이트를 타지 못해 속상해서 펑펑 울던 신승훈을 달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기타를 선물하였는데 이것이 결국엔 신승훈이 가수로 데뷔하게끔 해 준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재수 끝에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통기타 동아리인 '팝스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훗날 1집에 실린 '두 번째의 사랑'과 '그대의 마음은'의 작사, 작곡 그리고 '그대여 안녕'이라는 곡의 작곡을 했던 백병교를 여기서 만나게 됐다. 그

렇게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던 신승훈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당시 유명했던 대전의 PJ카페에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그 즉시 합격한 승훈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86년 8월 23일 대전의 PJ카페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서서 그만의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첫 무대를 가진 후 꾸준히 인기를 얻던 신승훈은 3개월 뒤에 피크타임으로 옮기며 그의 재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신승훈은 다양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해 나가며 수많은 팬레터 등을 받기도 하는 등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경험했다. 적어도 그의 고향인 대전에서 신승훈은 TV에 나오는 가수에 뺨치는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데뷔하기 전, 대전에서의 유명세에 힘입어 당시 성현기가 진행하는 대전MBC-"별이빛나는밤에"의 보조 MC와 고정 게스트로도 출연하여 음악적 재능과 말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본인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 무렵, 신승훈은 본인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욕심에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데뷔곡인 ‘미소속에 빛친 그대’를 포함한 1집에 수록된 7곡이 이 때 작곡한 곡들이다. 이 외에도 신승훈은 꾸준히 이문세 대전 콘서트 양수경‘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등의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보여주던 신승훈은 가수가 되겠다며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경하게 되었다.

자기 이름이 크게 쓰여진 앨범 하나 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신승훈은 객지인 서울에서 그렇게 고생아닌 고생을 하다 가리봉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당시 생긴 병 때문에 결국 다시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대전 엘브즈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작사가 신재각에게 보낸 데모 테이프가 인연이 되어 당시 서울 강남 일대에서 10년동안 DJ로 활동하고 있었던 김창환에게 우연히 신승훈의 곡이 들어간 데모테입이 흘러들어가 다시 한 번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 본인의 자작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 준비를 하기 시작해 신승훈은 1990년 11월 1일에 데뷔하게 되었다. 원래 1집은 1990년 10월에 발매가 되나 첫 방송을 앞두고 신승훈이 결막염에 걸리는 바람에 그 여파로 이튿날 스케줄까지 취소가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일어난 걸프 전쟁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방문으로 연이어 결방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11월 1일 방송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이는 신승훈이 존경하는 故 유재하, 故 김현식이 작고한 날이기도 하다.

신승훈은 훗날 자신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은 자신이 데뷔한 날짜에 작고한 유재하, 김현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11]

한편 신승훈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해, 2015년에 데뷔 25주년을 맞이했다.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할 당시 아시아 최단 기간 1000만장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이 사실이 빌보드 인터내셔널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후에 그는 최단기간 1,7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정규앨범 연속 7장의 앨범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당시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가요순위 차트지인 뮤직박스로부터 1990년대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이자 작곡가로 인정을 받았으며,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외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일본, 중국 등등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특히 일본으로 진출한 뒤로 현재까지도 많은 일본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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