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정주영 마지막 말 “못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코리아데일리 이규희 기자]

한국 현대화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25일 네티즌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이병철 정주영 창업자의 정신을 높이 사는 뜻에서 정부에서 기념 우편을 제작한 것이 알려지면서부터.

▲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
이러한 가운 데 이병철 전주영 전 회장의 일화가 새 다른 평가를 받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회사가 망합니다” 1983년 2월 이런 보고를 받은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탁자 위엔 ‘기술도 없는 조그만 기업이 경영자의 욕심 때문에 무모한 사업을 시작했다’는 투자자들의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고심하던 이 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됐다.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선포해라.” 이 회장의 나이 73세였다. 그 다음달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이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반도체 신화’의 시작이었다.

삼성은 그해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 예상보다 3년이나 앞당겼다. 하지만 84년부터 이어진 D램 가격의 폭락으로 4년간 1400억원의 누적적자가 발생했다. 이 회장은 87년 또다시 제3라인 증설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반도체 사업이 삼성을 뒤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다시 쏟아졌지만 이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이 회장이 작고(87년 11월)한 이듬해 삼성은 단번에 누적적자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92년에는 64메가D램으로 이 분야 1위로 등극해 256메가D램(94년), 1기가D램(96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기술 격차를 벌려 나갔다. 이를 발판으로 한국 기업들은 D램 세계점유율 67.8%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 이병철 정주영 기념우표
이와 함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승부수는 유명하다.

71년 9월 현대중공업 건설을 위한 차관 도입을 위해 세계적 선박컨설턴트사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에게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준 장면이 압권이다.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말로 추천서를 받아냈다. “배에 하자가 있으면 원금을 돌려주고 계약금에 이자까지 주겠다”는 자신감으로 아직 건설되지도 않은 조선소의 유조선을 두 척이나 팔았다. 이렇게 74년 탄생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국내 중공업 분야의 서막을 알렸다. 국내 조선소들은 세계 건조량의 34.5%를 차지하며 1위에 올라 있다.

이러한 근대 한국사에 빠지지않는 이병철 씨와 정주영 씨의 기업철학은 정주영 회장의 경우 일근천하무난사-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다 신용제일주의- 돈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것이 아니고 신용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것이다(돈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사람을 보고)이다.

이병철 회장의 기업철학은 인재제일 주의- 최고 일류 사원을 뽑고 선발해서 일류로 키워서 기업도 일류로 발전한다는 철학이다.

일등주의- 진출한 분야에서는 꼭 1위가 되어야한다는 기업 경영철학이고 사업보국-사업을 함으로써 국가에도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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