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 '허세로 치장한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 "자기자랑 시대"

[코리아데일리 한승연 기자]

10~20대 취향·가치관 반영하는 문화인 힙합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힙합은 삼포세대 저항의 표현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당당한 자기 자랑에 열광하고 하고싶은 말을 가사로 진솔하게 표현하는 매력적인 장르이다.

지난달 래퍼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에는 스냅백을 눌러쓴 20대 초반의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후 4시가 되자 사람들은 1000여명이 됐다. 이들은 오후 9시가 돼서야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래퍼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 1차 경연을 방청하려고 대여섯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이날 오후 기온은 32도까지 올라갔다.

엠넷 '쇼미더머니4'의 시청률은 2~3% 정도다. 하지만 10~20대 사이에서 이 프로그램이 갖는 영향력은 시청률로만 평가할 수 없다. 12일 네이버 음악 이용자의 음악 재생 횟수를 세대·성별로 분석한 결과, 10대와 2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들은 노래 1위는 모두 '쇼미더머니4'에 나온 노래였다. CJ E&M과 닐스코리아가 선정하는 주간 콘텐츠파워 지수에서는 전체 5위를 차지했고, SNS에서 언급된 소셜버즈양은 전체 2위다.

힙합은 대중음악 하위 장르 중 하나가 아니라 10~20대의 취향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문화가 됐다. '쇼미더머니4'의 심사위원인 지코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시작해서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리더가 된 경우다. 아이돌이 랩을 하는 게 아니라 래퍼가 아이돌이 되는 시대가 왔다.

10~20대가 열광하는 힙합의 중심에는 '스왜그(swag)'가 있다. 래퍼가 자신의 멋이나 여유를 허세 부리면서 표현하는 것을 스왜그라고 한다. "난 돈도 잘 벌고 인기도 많다"로 요약되는 힙합 가사도 스왜그이고, 번쩍거리는 장신구를 온몸에 매달고 다니는 것도 스왜그이다.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스타일이자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가 가진 것을 마음껏 뽐내면서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CJ E&M 일산 스튜디오에서‘쇼미더머니’1차 예선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오후 3~4시부터 기다려서 오후 9시 입장한 방청객들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방청객 임재민(22)씨는“래퍼들은 우리가 하고 싶지만 하기 힘든 말을 음악으로 내지른다. 당당해서 멋있다”고 했다. /Mnet제공
이전에는 연예인이 자신의 부와 인기를 언급하는 데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스왜그에 열광하는 세대에게 이런 물질적인 성공은 당당하게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SNS에 자신의 일상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데 익숙한 이 세대는 돈, 인기와 같은 속물적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인기 래퍼 '도끼'는 자신이 갖고 있는 수퍼카를 찍어서 SNS에 올리고, 팬들은 이를 노골적으로 부러워한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래퍼 빈지노를 선망하는 '빈지노'라는 랩도 있다. '쇼미더머니4'에 참가한 래퍼 '블랙넛'이 작사한 이 곡은 '내 것이었으면/ 빈지노의 돈/ 빈지노의 차/ 빈지노의 옷'이란 가사로 시작한다.

겸손하거나 예의를 차리는 게 이곳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경쟁자들이 덕담을 하면 관객들의 반응은 썰렁했다. 여기선 악동일수록 인기가 많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화제가 된 래퍼는 '블랙넛'이다. 그는 여성 래퍼를 성적으로 비하하거나 경연에 나온 다른 래퍼를 욕하는 랩으로 논란이 됐다. 이렇게 경쟁 상대를 비하하는 랩을 '디스'라고 한다. 경쟁에 익숙한 이 세대들에게 래퍼들의 디스는 오히려 즐길 거리에 가깝다. 이날 방청객으로 온 송영성(20·대학생)씨는 "한 번쯤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서 블랙넛을 좋아한다. 래퍼들끼리 물고 뜯으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욕설과 여성 비하가 담긴 가사로 논란이 된 '쇼미더머니4'는 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최고제재인 '과징금 부과'를 받았다.

지금 힙합을 소비하는 세대가 스왜그나 디스에 열광하지만, 이것이 힙합의 전부는 아니다. 원래 힙합은 차별과 편견에 저항하는 음악으로 시작됐고, 그 가사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쇼미더머니' 지난 시즌 우승자인 바비는 랩에 가수가 되기 전까지 어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는지 담았다. 돈과 차, 인기를 과시하는 곡들만큼이나 이 세대가 겪는 경제와 진로, 이성 문제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곡들도 호응을 얻고 있다.

힙합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온 전기철(21·대학생)씨는 "아이돌 음악에서 표현하지 않는 것들을 힙합은 표현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가사 때문에 힙합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20세기 10~20대들이 저항의 표현 수단으로 록을 택했다면, 21세기 그들에게는 힙합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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