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유승민 공개사과'로 여론 정치? "민심은 메르스에서 떠났다"

[코리아데일리 한승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퇴진 압력’이 여권 내 권력지형의 변화로 이어질지가 정치권과 여론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건 왜 박 대통령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으로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 ‘퇴진’ 카드를 들고 나왔냐는 점이다.

당초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25일 뿐 아니라 30일 국무회의에서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메르스 확산세가 진정되면서 지지율이 오르는 시점까지 기다리지 않고 25일 거부권을 행사했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유 원내대표를 사실상 ‘자기정치를 위해 민의를 외면한 정치인’으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내부에선 박 대통령이 여당에 느끼는 실망감이 너무 커서 지지율을 고려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박 대통령이 정치적 득실보다는 이대로 가다가는 남은 2년 반의 임기를 국정동력을 잃고 성과 없이 마무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당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셀 줄은 몰랐다. 한기(寒氣)가 느껴질 정도였다. 회의에 마치고 나서도 대통령의 기(氣)에 눌려 제대로 서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박 대통령으로부터 예상 밖의 ‘초(超) 강경’ 대(對) 국회, 특히 여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脫黨)’이나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의 개편, 차기 대선구도 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얘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소설 같은 얘기”라며 일축하며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이 국정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 아니냐”며 “정치란 국민을 위한 존재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말씀”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이번 박 대통령 발언이 당청관계 뿐 아니라 여당 내 ‘권력지형 변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박 대통령의 ‘초강경 비판’은 당장 그 파장이 ‘정조준’의 대상인 유승민 원내대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당내 구도가 비박(박근혜)계 중심으로 흐르면서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고 그 구심점에 유 원내대표가 있었던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만을 겨냥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무성-유승민 ‘투톱’을 중심으로 한 여당 지도부와는 남은 2년 반의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한 청와대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현 새누리당 지도부로는 ‘보수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탈당 후 정계개편 까지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위해 친박(박근혜)계가 ‘투톱’ 와해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청와대의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실상’ 재신임을 결정하는 등 여당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맞서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당청갈등 뿐 아니라 비박 지도부와 친박계 간 분열 또한 심화하며 김무성 대표 지도체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26일 박 대통령을 향해 거듭 머리 숙여 사과했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그 정도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어야 한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친박계에서는 "대통령이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것",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등의 강경 기류가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와 친박계의 사전 교감 속에 '당 지도부 붕괴'와 '대통령 탈당' 가능성이 빈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지도부 붕괴'는 친박계의 맏형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친박계 이정현 최고위원(지명직)이 사퇴하고, 친박계로 분류되진 않지만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이 직을 내려놓으면서 당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리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같은 승부수를 관철시킬 당내 권력 구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는 ‘핵심 친박’은 10명 안팎. 25일 의원총회에서도 발언에 나선 40명 가운데 친박계 의원 3명만이 유 원내대표에 퇴진을 요구한데 반해, 35명은 원내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다시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한 입장을 거듭 언급할 경우 친박계 발언에 힘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이에 오는 29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청와대 안팎에서 제기되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유 원내대표의 주말 자진사퇴로 당청 및 친박·비박계간 갈등 없이, 박 대통령이 여당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적 여론 없이 무난히 수습되는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